너 혼자 살면 나처럼 된다. 집으로 돌아 가. 가서 따듯한 집밥 처먹고 생각 좀 진정시켜보고.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러니까 201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해서 오갈 데 없던 나를 재워주던 30살 형님이 족발을 사 먹이며 했던 말이다. 가출한 지 3일 만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진수성찬을 즐기며 행복이 치사량까지 다다르고 있던 때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게다가 '형님'처럼 된다니?
형님은 동대문에서 부모님이 하시던 의류공장을 그대로 물려받아 의류 편집샵 브랜드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형님은 매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비싸 보이는 오토바이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며칠, 몇 달이 걸려도 해내곤 했다. -본인은 그렇게 하며 '나는 사장이니까 쉬엄쉬엄 해도 돼'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것은 나중에 내가 사업을 하게 만들었다-
나와 형님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약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나는 종종 가정에서 도통 느끼질 못하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형님의 사무실로 불쑥불쑥 찾아가곤 했다.
상왕십리역에서 내려 2번 출구 방향으로 그대로 직진하고 있노라면 청계천이 나왔고, 그 청계천을 지나 가로등 하나만이 비추는 -그마저도 다 낡았는지 오락가락하는- 어두운 뒷골목길로 빠져 들어가면 패턴실, 의류 창고 같은 것들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그 형님의 사무실이었다. 오래된 빨간 벽돌집 2층으로 올라가면 언제든 찾아가도 불은 켜져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형님은 컴퓨터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며 나를 맞이했다.
골목이 대충 이렇게 생겼다. 밤이 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이 조용하고 어둡기만 하다.
나에게 있어 '자유'는 누려본 적이 없는, 그래서 더 간절한 목표였다. 그런데 그 '자유'를 세상에서 제일 마음껏 누리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처럼 된다'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다니?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앞다리 살보다 3천 원이나 비싼 뒷다리살을 사용한, 부들부들하고 따듯한 족발이 너무나도 맛있었기에 먹는데 집중하기로 했었다.
어쨌든 난 다른 사람 말은 '뒤지게' 안 듣는 타입인지라 그 이후 학교 근처 고시원 방을 얻어 독립을 시작했고, 올해로 군대 2년을 포함하여 7년째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옮긴 거주지만 5곳이고, 지금은 경기도권에서 투룸 전세방을 얻어 세상 예쁜 고양이 한 마리와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우리 집 예쁜 고양이. 이름은 김우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의 고양이 이름을 따왔다.
간혹 '나처럼 된다'의 의미를 돌아보곤 한다. 세상 행복해 보였던 그 형님은 뭐가 불행했기에 '나처럼 된다'를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했을까. 노총각이어서? 돈벌이가 시원찮아서? 직접 물어볼 수야 있지만, 형님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뭐, 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나름 재밌으니까. 굳이 찾아내서 물어보려고 하진 않는다.
어쨌든 그 멘트로 인해 '각자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내 행복의 기준을 찾아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답을 찾으려면 해설지를 천천히 읽어보면 되지 않겠는가? 내 역사가 나의 해설 지니, 천천히 기록해보며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