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길게 먹일 수 밖에 없었던 뜻밖의 이유
모유수유는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게으른 나를 위한 것임을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23개월의 모유수유 대장정을 끝내는 첫걸음, 오늘을 돌아보며 글을 남긴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의 10달 연결고리 탯줄을 끊지만
새로운 애착형성의 기회가 있다
내가 포유류였음을 깨닫는 모유수유라는 기회,
오늘로써 모유수유를 한지 23개월째다.
시작은 쉬웠으나 끝은 너무나 어렵다
나의 품에 안겨 헥헥 거리는 거친 숨으로
냄새만으로 젖꼭지를 찾아내던 그 신생아,
힘차게 젖을 빨던 그 아이들이
한명은 9살, 다른 한명은 세살로 접어든다.
첫째는 15개월 무렵까지, 둘째는 만 23개월까지
남들은 싫어서 안하고, 못해서 안한다는
이 모유수유를 이렇게 징하게 한 것은
나에겐 든든한 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보건기구 W.H.O
WHO가 24개월까지 모유수유를 권장한다는 말을 듣고,
그래. 좋다니까 한번 시작해보자며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 모유수유 하면 할수록 끊기 어려워졌다.
그 이유는 2가지다.
첫째. 나는 게으른 엄마다. 새벽에도 여러번 잠에서 깨서 분유를 데우고, 심지어 아이에게 적당한 그 온도를 맞추는 부지런함이 나에겐 없었다. 아이가 다시 잠들 때까지 어르고 달래다가 다음날 헤롱헤롱한 나날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남편은 일로 너무나 바빴고 나는 100퍼센트 주양육자였다. 외출을 할 때 손수 소독한 젖병, 적당한 온도의 물 이런 것들을 챙길 꼼꼼함도 나에겐 없었다. 그저 누워서 수유하면 아이는 만사오케이! 꿈나라로 아주 편안하게 수영해들어갔다.
둘째. 나는 무딘 엄마다. 복잡하게 계산하거나 검색하는 것에 능하지 않다. 모유수유가 좋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먹이기 시작했다. 양이 적거나 말거나 아이가 적당히 잘 먹고 잘 노는 것에 만족했지, 시간과 간격을 재거나 모유양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았다. 둔한 나에게 모유수유가 아주 딱이었다. 어떤 분유를 먹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속 편했다.
그런데 이렇게 모유수유를 오래 하다보니,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젖꼭지와 아기의 보드라운 입술이 닿으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세상 가장 적절한 온도의 모유가 전달된다
모유의 영양학적 가치만 크게 생각했다.
그런데 모유는 단지 배를 채울 뿐 아니라
아이와 나에게 우유 그 이상의 가치로 자리잡았다.
뒤뚱뒤뚱 어설픈 걸음으로 걷다가 철퍼덕 넘어져도
다가가서 안아주고 가슴을 풀어헤치면
아이는 금새 엄마 심장 소리를 듣고 평정을 되찾았다.
.
어떤 불안과 화, 부정적인 마음도
엄마의 젖내음과 따뜻한 심장소리, 체온 속에
사그라들었다.
쿵쾅쿵쾅 거칠던 아이의 숨은
쌔근쌔근 낸내로 그렇게 보드랍게 착지할 수 있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안되고 반드시 엄마여야만 하는 비밀스런 이유
유난스럽지 않고 옛날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나임에도
아이와 끈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모유수유 덕분이었으리라.
매운 것도 짠 것도, 건강에 좋은 것만 먹으려는 부담이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길게 모유를 먹이진 못했을 것이다.
2년간 독한 항생제를 먹어야할만큼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랬다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모유를 끊어야 했을테고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는 큰 고충이었을테니까.
밤중수유를 길게 하면 아이의 치아건강에 좋지 않고, 수면 습관도 나빠지고
낮에 충분히 먹지 않아 성장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끊어보리라 결심했던 것이 여러번이었다.
하지만 돌 지난 이후 이른 가족여행으로 해외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많았고, 모유는 비행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모유는 아이가 다른 승객들에게 칭찬 받을만큼 긴 시간 비행 내내 잘 있을 수 있었던 감사한 존재였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모유 끊기는 쉽지 않았다. 잠을 푹 자야 남편이 좋은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으니, 아이를 크게 울리지 않고 재우려다보니 그새 2년이 흘렀다.
만 2살이 되니 아이는 일상 대화를 거의 알아듣고, 자기 의사 표현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설득했다. 찌찌는 이제 오랫동안 먹었고, 아가가 찌찌없이도 이가 충분히 튼튼해서 밥도 잘 먹을 수 있으니, 찌찌는 아기곰돌이에게 주자고 했다.
형아는 아기곰돌이 그림을 그려주었고, 10일 후에는 찌찌와 굿바이한다는 의미의 숫자도 써넣었다. 아이는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찌찌는 곰한테 주어야한다고 '공!'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젖을 끊기 며칠 전부터 수시로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이제 찌찌 그만 먹어야 한다고, 그랬더니 아이도 '찌찌 안돼!' '공!' 했다. 이해와 설득이 가능한 것, 늦은 단유가 주는 나름의 장점이다.
드디어 찌찌 없이 잠든 날, 오늘 밤이었다. 수유를 안해도 잠들 수 있도록 반신욕도 해주고, 기분 좋게 노래도 불러주었다. 충분히 피곤할 수 있게 평소보다 한시간 늦게 침실에 들어갔다. 나는 밤에 자다가 무서우면 엄마가 꼭 안아주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내 배 위에 올려주었다.
아이는 스스로 '안돼, 안돼' 되뇌이고 엄마 가슴에 손을 넣었다가도 이내 결심을 한듯 이불로 가슴을 슬며시 덮어주었다. 엄마 찌찌를 만지면 더 먹고 싶을 것 같아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아기는 울기도 하고 스스로 다짐 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와 아기를 만 2년간 이어준, 탯줄 다음 두번째 끈 모유수유와 작별을 고한다.
6년전 첫째와 모유수유를 마치던 날에도 훗날 그 때가 그리울 것 같아 눈물을 흘렸었다.
이제 술도 마음껏 마셔도 되고, 미뤄놓았던 항생제들도 다 먹어도 되는데
마음이 왠지 시원섭섭하다.
문득 마음이 서러운 날, 더 이상 마실 모유가 없더라도
2년동안 위안이 되었던 그날의 우유, 엄마의 감촉을 기억하며
우리 아들들이 마음을 잘 여미기를 바란다.
탯줄을 끊고, 젖을 끊고
아이는 이제 땅에 자기 발을 당당히 딛고 세상으로 걸어나간다.
마음 속에 든든한 곳간을 갖고 나가는
2살 아기, 두번째 독립을 축하한다.
누군가에게 생명 줄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만족감을 주고
오직 엄마여야만 한다는 몸짓으로 자존감을 높여줘서 고맙다.
그 다음 단계도, 또 그다음 단계도 우리 함께 잘 해보자.
-게으르고 무딘 너의 엄마 밤 11시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