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책들은 누굴 위한 것이었나
남편은 워너비 드림카를 보면 설레지만
사실 나는 그런 데 별 관심이 없다.
비싼 백도 처음 가졌을 때만 설레었을 뿐
물건 그 이상의 희열을 주진 못했다.
언제든 돈이 있으면 바꿀 수 있는 게
물건이니까.
사회생활을 안 하니 자랑할 사람도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순수하게 내가 이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옷을 편하게 걸치고 나니
미니멀리즘이 거창한 게 아니구나 싶다.
아이가 요구르트를 흘려도 짜증 내지 않을
도서관 책 먼지들이 떨어져도 절대 걱정 않을
에코백 한 세 개 갖추고
하나 둘 빨아가며 사용해 보련다.
첫째의 책육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직장을 나가던 시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주말부부에 혼자 아이를 보던 극강의 독점육아 시기에도, 아이가 둘이 되어 둘째가 두 돌을 지나기 전에도, 취침시간이 되면 하루 피로가 온몸에 진하게 흡수되어 난 애들보다 먼저 뻗기 일쑤였다.
솔직히 고백해 본다. 아이 책을 사던 시절 책의 소비는 엄마의 기쁨과 안심의 수단이기도 했다. 대학시절 어떤 교수님은 수업 중 필기를 못하게 하셨다. 그 의미가 의미심장했다. 필기를 하는 순간 다음에 봐야지 하는 마음의 안심으로 글자를 쓰는 데 정신이 팔려있지 내용을 숙지하는 데는 그다지 몰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사기 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즐겁게 택배 포장을 뜯는다. 워킹맘일 때엔 못 놀아주는 죄책감을 책쇼핑으로 달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쇼핑의 목적은 아이를 달램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사놓은 책들은 책장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한자리에 꽂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휴직을 하면서 책의 의미에 대해 곱씹을 기회가 생겼다. 대학시절 임용공부에 바빴고 일할 때는 문서와 교과서를 보느라 진정한 책과 사귈 겨를이 없었다. 아이 낳고 사느라 30대도 빠르게 저물었다. 휴직하면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보게 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진짜 지식과 교양에 목이 말랐고 고전을 읽고는 무릎을 치기도 했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선물하려고 첫째에겐 아직 선행과 학습을 위한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 둘째에게 영상 노출보다는 책과 더 가까워지는 아날로그 육아를 해볼 엄두도 생겼다.
유기농으로 키운 작물은 매끈하게 잘생긴 맛은 없어도 몸에 좋은 본연의 맛을 낸다.
외모를 다듬기 전에 영혼을 먼저 다듬는 엄마
지름길 찾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려 한다.
보여주는 대로 보고 자라는 아기들을 보면 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주문하는 건 그럼에도 내게 가장 큰 기쁨이다. 도서관을 가는 것도 책방에 가는 것도 여행처럼 늘 새롭다. 보드라운 표지와 새책 내음 나는 하드북을 꺼내 들고 말을 거침없이 뱉기 시작하는 만 2살 아들과 신나게 읽어본다.
잊고 살았던 그림의 예쁨을 알게 해 주고 순수한 사랑으로 온전히 믿고 따르는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니
책을 보는 엄마와 아이의 눈이 아름 초롱하기 그지없는 밤이다. 깊은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