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닝뽀유 Jun 05. 2023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란 걸 안다.

그러면서도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 이름만으로

가슴 속에 뿌리깊이 자리잡을 수 있는 존재

멀어져서야

배고파 외치며 찾는 존재


엄마


나는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

나를 위한 시간 대신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내가 희생하고 있다 여겼다.


착각이었다.

그 모든 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엄마를 좇는 맹목적 순종, 순수한 믿음, 초월적 사랑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아이는 무한히 베풀어준다.


아이는 가르쳐준다

비로소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아이는 가르쳐준다

누군가에게 없어선 안될 소중한 존재라고


아이는 가르쳐준다

인내심의 가치와 작은 행복의 묘미를


아이는 엄마에게 삶의 의미를 심어주기 위해 왔다

세상 풍파를 헤치고 열심히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준다.


사실 나는 오늘도 욱했다.


남편의 2박 3일 풀타임 출장과 4일 연휴가 완벽히 겹쳤는데, 체력 충만한 형제를 위해 텐트를 들고 종일 공원 캠크닉을 떠났다. 집순이에겐 큰 모험이자 용기였다.

집에 돌아오니 어질러진 집이 뙇 기다리고 있었고, 혼자 식사준비, 청소, 설거지, 책읽어주기, 집청소, 샤워에 양치까지 올인원으로 해치우니 에너지가 고갈되어 남은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키려 하고 있었다.

그래도 종이컵 대신 와인잔에 마시는 사치는 부려보자하며 따르고 있는데 와장창 저 멀리 테이블에서 굉음과 함께 엄청난 액체들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옆에 당황한 세살배기 남자어린이가 정지모드로 서있다. 진한 고기육수로 만든 떡국과 빨간 깍두기 국물, 여기에 우유 한컵까지 완벽한 콜라보를 선보이며 음식들은 바닥에 화려하게 엎질러졌다.


유광타일에 엎질러진 우유는 극강의 미끄러움과 대량 청소를 예고했고, 놀라 내지르는 엄마의 함성을 듣고 미어캣처럼 서있는 아기에게 티 안내도 티 왕창나는 짜증을 선보였다. 잠시 진정한 다음 “엄마 도와줄려고 그랬어”하니 둘째가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끄덕끄덕한다.


종일 공원에서 축구랠리를 펼친 형아는 씻을 엄두도 못낸 채 책을 읽다가 엎어져 잠들었다. 형아를 샤워시켜 눕히고 “이젠 육퇴구나”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려는 찰나, 3살 꼬마는 책장 위로 손을 뻗어 리본을 잡아 당겼고 통 속에서 블럭들이 차라락 경쾌하게 쏟아진다.


아이의 한 마디는 나에게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해줬다.


“울 아기  많이 놀라또?” 스스로 엄마인 척 연기 선보이는 아들 덕분에 밤 12시는 숙연한 함박웃음이 장식했다.

엄마보다 백보 더 나아가 감정코칭의 정석을 보여주는 센스에,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문장에 욱하는 마음에 감정의 소화기를 뿌려본다.

그래. 오늘 밤은 니가 엄마보다 더 엄마구나. 미성숙한 나를 어떻게 알고 넌 그렇게 우주에서 나를 향해 형과함께 손을 잡고 날아왔을까.


가끔 신기하고 많이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품백보다 책 한 트럭이 좋은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