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면 남자들은 회센터 생선처럼 급이 나뉜다. 빠릿빠릿하고, 센스 있고, 선임이 시키는 걸 잘하면 A급이 될 수 있다. 잔혹하게도 A아래로는 B, C를 생략하고 폐급이 있었다. 폐급이라 불리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1인분 몫은 한다는 의미였다.
나보다 1년 위 선임은 내게 종종 센스 있다 칭찬을 해줬다. 하지만 A급이라 부르진 않았다. 선임이 보기에 내가 흐뭇할 정도로 잘하는 후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만족했다. 적어도 난 폐급은 아니구나. 1인분은 해내고 있구나. 군생활 잘해서 뭐 남는 게 있나. 적당히 설렁설렁하고 전역하자 마음먹었었다.
내가 선임이 되고 후임들을 받아보니 실제로 A급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무언갈 잘하면 다른 게 모자라거나 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군대 특유의 경직된 문화도 한 몫했다. 선후임 간 관계는 터울 없이 지낼 수가 없었기에, 관대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폐급이라 느낄 정도만 아니면 같이 지내는 게 어렵진 않았다.
전역 후 복학해선 학교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가 많았다. 대학 전설처럼 내려오는 조별과제 빌런은 언제나 존재했다. 빌런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자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다. 난 어쩌면 조원들에게 폐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뭣도 모르면서 1인분은 해내고 싶어서 이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오 그런가요 하며 변죽을 울리곤 했다.
사회에 나와보니 1인분을 해내는 데 난이도가 훨씬 올라갔다.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그 몫을 잘 해내는 것도 더욱 엄격히 평가됐다. 신입사원 시절 팀장이 사무실에서 "너는 네가 일 잘한다고 생각하냐?"라고 정색하며 물은 적도 있었다. 물론 그 팀장은 사내에서 악명높은 군기반장인 특수한 케이스였지만 당시 팀장에게 받은 질문은 내 뇌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이등병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군인이었다면 모자챙 밑으로 눈알을 부라리기라도 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어느덧 입사한 지 만 7년이 다돼간다. 군인이었으면 최소 중위는 됐을 시간이다. 일 잘하냐고 갈굼을 받던 6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A급에 다다르진 못했다.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조금 더 힘을 빼고 할 수 있게 된 정도다. 그렇다고 아쉽거나, 분발해야 한다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내가 맡은 일을 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폐끼치진 않기 때문이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 했던가. 어느 조직에 있던 별난 사람은 존재한다. 군대 시절로 치면 폐급이라 불릴만한(대놓고 폐급이라 하진 않겠지만) 사람들. 그 수준에만 다다르지 않고서 직장생활을 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A급은 피곤할 것 같다. 난 짜장면도 곱빼기를 먹으면 포만감보단 더부룩함이 찾아온다. 1인분이라도 잘 해내며 쭉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