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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고래 May 29. 2024

24층 이상한 애

나는 어떤 사람일까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곧 1년이다. 부서에 어떤 선배가 나를 불러서 1년 전이랑 뭐가 달라진 거 같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사실 지난 1년간 한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나가고 싶어서 그런 거긴 한데(^^) 어쩌면 취준 기간에 남들이 열심히 하던 고민을 미뤄두었더니 이제야 그 고민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민을 하며 가지게 된 확신 중 하나는 일단 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싶은 창작욕이 큰 사람이라는 거다. 글이든 뭐시깽이든 계속 뭔갈 만들어내고 싶고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근데 여기서 미스가 나는 게 뭐냐면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미친 듯이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것. 이제까지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말 솔직히 나를 돌아봤더니 나는 남을 미친 듯이 정말 그것도 미친 듯이 신경 쓰는데, 남들의 반응을 캐치해내는 능력은 정말 어이없게 낮아서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남의 반응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물음표나 느낌표가 되어서 내 속의 세계를 가격할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 필기를 하실 때 m이나 n을 필기체로 쓰시곤 했다. 그땐 필기체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수업시간에 대뜸 손을 들어서 선생님은 왜 m을 쓸 때 혹을 하나 더 그려요? n은 왜 m처럼 써요? 하고 여쭤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주위애들은 쟤 또 잘난 척한다 싶었을 수 있는데 그땐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시긴 했는데 그때 옆에 친구들이 나지막하게 "거봐라 에이 거봐라"라고 놀렸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었다.  

  서른을 앞두고 있지만 그때 거봐라 목소리에 울어버렸던 나는 어디로 가지 못하고 여전히 내 속에서 남들의 반응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뒤에도 내가 병적으로 힘들었던 순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순간들은 모두 타인의 반응이 그 촉발점이었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고 남들의 평가가 너무나 궁금한데 그 평가를 미리 예상해내는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긍정적 평가든 부정적 평가든 거기에 너무나 쉽게 흔들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 1년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남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할 만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 행동을 의아해하거나 어떠한 긍부정의 리액션을 보이면 대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이럴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속에 담아서 두고두고 생각하곤 했다. 그냥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방어기제로 나는 남 생각 따위는 신경 안 쓴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렇게 말할수록 더 약해지는 건 오히려 나였던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런 성격은 사실 누구나에게 조금씩 있는 것일 수 있지만 나에겐 이 부분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그동안 나를 바라보려고 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눈과 입을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됐던 것도 다 이런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감수하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든가, 아니면 이런 성격을 베이스로 선택을 좁혀보든가 선택지들은 많은데 방향성을 쉽게 잡지 못하겠어서 난처하다.

  회사 사람들은 이런 나를 쉽게 '특이한 서울대 신입'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서로를 개념화하고 그 속의 깊숙한 사정은 부담스러워서 알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적당한 깊이의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이 곳에서 나는 내 속의 어느정도 얘기까지를 끄집어내야할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신입에게 듣고싶어하는 얘기는 정해져있다. "~~~하는 일이 하고싶어요"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선배님은 ~~~하셨어요?" "저는 어제 주말에~~~ 했는데 요즘 이게 재밌어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는데 내가 들려줄 이야기에는 그런게 없다.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이 들지도 않는다. 진짜 알맹이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몇 달 째 하고 있다보니 마음이 텅 빈다. 이 사람 많은 24층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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