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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고래 May 04. 2024

마음만은 재벌딸이던 내가

한 달간의 무지출 챌린지 후기

지난 한달간 우리 부부는 처음 무지출챌린지라는 것을 해봤다. 한달간 한푼도 안쓰는건 할 수 없고 일주일에 한번만 외식하고, 5-7만원으로 일주일치 장을 봐서 그걸로 밥해먹고 그외 커피나 음료수 같은건 사먹지 않기, 옷 같은 사치품은 일절 사지 않기 등을 했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진심으로 돈을 아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도 돈을 아끼거나 저금해야 할 필요를 느껴보지 못했다. 가진 게 많아서라기보다는 <굳이? 지금 갖고 싶은걸 못 가지면 나중에 모은 돈이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컸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지금 바로 사고, 저금할 돈으로 차라리 기부를 하고 지금의 내가 뿌듯함을 느끼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 거 다 사고 쓸 거 다 쓰고도 돈이 남으면 가족에게 돈 주고, 학교에도 기부하고 단체에도 기부하고 여기저기 펑펑 기부했다. 그런 돈이 아깝지가 않았다. 어차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부족해지면? 벌면 되지! 의 생각이었다.


와 근데 이제 가족이 생기고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여행도 다니고 하다 보니까 저금을 하고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내가 신기해서 왜일까를 생각해 봤는데 전의 나는 오로지 지금이 제일 좋아! 였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지금도 물론 행복하고 미래에도 계속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자꾸만 내일을 꿈꾸고 바라게 되는 마음이 돈을 모으고 아끼게 되는 마음과 닿아 있다.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걸 생각해서 우선순위를 정해 돈을 쓰게 된다.


고작 한 달 돈을 아껴보고 이런 리뷰를 쓰는 스스로가 좀 우스우면서도 귀여운데 돈을 아끼는 마음은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게 한다.  사실 이번 무지출 챌린지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가 여행 가면 정해진 돈과 시간 안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걸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들고 간 여행가방 안에 넣고 올 수 있는 기념품의 양은 한정돼 있으니 정말 정말 갖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걸 사 온다. 돈을 아끼다 보면 일상도 이렇게 살 수 있게 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맞춰서 돈을 쓰는 정도를 정하게 되고, 현대사회에선 어디에 가는 것도 내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도 모두 돈과 연결되다 보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게 되고 그건 곧 돈을 쓴다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밖에서 밥이나 커피를 아예 안 사 먹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횟수를 많이 줄였다. 굳이 밖에서 그런데에 돈이나 시간을 쓰는 것보다 집에서 남편이랑 지지고 볶고 요리도 하고 집 안팎을 보살피고, 삼국지를 보거나 나루호도 게임을 하면서 커피를 내려마시고 어떻게 하면 커피를 더 잘 내릴 수 있을까 이야기하면서 보내는 게, 돈을 덜 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느껴지는 효용이 훨씬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프티콘이나 포인트로 바깥에서 남이 내려주는 커피, 남이 만들어주는 밥을 먹으면 그게 또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컴포즈커피조차 맛있게 느껴진다 ㅋㅋ 아끼다 보니까 가끔의 외식에서 얻는 효용이 또 커진다. 이러니까 돈을 안 아끼는 게 바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됐다. 또 그전엔 밖에 나가서 딱히 뭘 하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집에 계속 있으면 좀이 쑤시고 뭔가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이 시간에도 나는 돈을 아끼고 있다 ㅎㅎ 우리 남편이랑 다시는 안 올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 ㅎㅎ는 생각이 들어서 삶의 만족도가 정말 최상이다...... 이번 한 달 나는 그야말로 불행할 겨를이라곤 없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이런 삶을 계속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고민된다. 둘 다 일은 안 하면서 또는 우리 입맛대로 유동적으로 주 1-2회 일하면서 월에 일정한 돈이 따박따박 들어와 주는 그런 삶은 생각해 보면 건물주의 삶이 이런 것일까..? 싶다. 그런 점에서 건물주들은 굉장히 럭셔리하게 살 줄 알았는데 우리 지금 일상을 보면 또 아주 그렇지만은 않구나 싶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도 우리가 요즘 이렇게나 안락하고 즐거운데 이게 곧 럭셔리가 아니면 뭐가 럭셔리인가! 호강에 겨워 이게 분에 넘치는 감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최근에 재테크를 생애 처음 검색해 보면서 알게 된 건데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삶의 기준이 노동 없이 들어오는 월 500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말만 듣던 경제적 자유구나...... 달콤하네....


아무튼 그래서 이런 삶을 계속 가능케 하고 싶어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면 우선 절약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절약과 동시에 지금 버는 돈을 불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나도 돈을 좀 더 벌어와서 시드를 키워야겠다. 과외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고 대출이 나오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돈을 싫어했던 적은 없지만 돈벌이보다는 <내가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면서 돈도 벌면 좋지 껄껄>의 마인드였는데 이젠 돈벌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내가 스스로를 구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방향이어야 하겠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그래도 뭐 어떻게든 열심히 하면 다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솔직히 막연하게 그냥 밑천 아무것도 없는 대학생 때도 강남 길 걷다가 언젠간 나도 저런 건물 하나쯤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는데 열심히 살다 보면 월세 받는 건물주도, 나의 꿈인 풀빌라 소유주도 정말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 모든 것도 다 수단이고 궁극적인 나의 목표는 남편과 평일에도 며칠쯤은 두 끼 밥을 함께 여유 있게 지어먹을 수 있고, 알람을 매일 맞추진 않아도 되는, 날씨가 좋으면 훌쩍 어디든 갈 수 있는 유도리를 부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가족이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가끔 좋은 곳에서 밥 한 끼 정도는 아까워하지 않고 대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망설이는 일 없는, 외국어를 4-5개 정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누군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삶이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벌써 이뤄진 것처럼 맘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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