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라 불리는 마이크로매니징에 대한 생각
결혼하기 전에는 우리 엄마가 통제광이라고 생각했다. 가족 모두가 엄마의 취향대로 옷을 입지 않으면 맘에 들 때까지 얘기하고 집안일의 작은 요소라도 다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다른 집 엄마들도 거의 그러는 것 같았고 보편적으로 가정에서 아내 또는 엄마 라고 하면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통제하는(잔소리라고 불리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신기하게도 결혼하고 나니 나에게 그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잦다. 다른 가정을 볼 때 돈 버는 사람이 남편인데 자기가 번 돈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다 주고 용돈을 받아 산다니 말도 안 돼, 다 큰 성인에게 통금이라는 제도가 대체 왜 필요하지 부모에게 독립하고 나서 왜 다시 누군가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좀 다른 와이프라고 생각해 왔었건만. 나에게도 남편을 마이크로매니징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게 충격적이다.
사실 다 먹은 생수병을 베란다에 있는 분리수거함에 지금 갖다 두든 이따 가져가든 큰 상관은 없다. 우리 남편이 그런 걸 안 버리는 사람도 아니고, 늦게 버리는 일이 수백 번쯤 누적된 것도 아니다. 그러려니 할 수 있는걸 나는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마디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놀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여보 그 티에는 다른 바지가 더 예쁘지 않을까?> 같은 말들처럼 별일 아닌데 왜 하나하나 다 컨트롤하려고 하지라고 생각한다. 네가 그 옷 입는 게 너무 예뻐서 좋아 헤헤 자주 입어줘~ 같은 느낌과는 또 다른 위화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입장을 바꿔 남편이었다면 쓰레기도 아무 말 없이 대신 버려줬을 거고 내가 무슨 옷을 입든 어느 게 더 예쁘냐고 먼저 조언을 구하지 않는 한 진심으로 다 좋아해 준다. 내가 실수를 안 하는 완벽한 사람인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자꾸 통제하려 할까?
이건 여자들의 문제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단지 앞마당에는 요독 쓰레기 버리러 나온 김에 핸드폰으로 영상 보고 들어가고 담배 몇 대 피는 아저씨들이 많은데 그들을 볼 때마다 묘하게 후련해 보인다. 와이프 친정 가면 좋아하는 남편들이 많은 것도, 힘들게 돈 벌고 용돈 받으면서 눈치 본다는 얘기도 보통 남편들 입에서 많이 들린다. 예전엔 그게 그냥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딱해 보일 때가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스스로를 많이 통제하고 남 눈치를 많이 보면서 살다가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 가족구성원을 본인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하던 간섭이나 통제를 그들에게도 전이하게 되는 걸까라고 가설도 세워봤다.
사실 내가 모집단 수십만 명을 갖다가 실험을 할 것도 아니고, 이런 걸 알아낼 수 있는 계량화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냥 내 맘에 안 드는 모습이니까 내가 바뀌면 되는 거겠지 싶어서 남편의 마음가짐을 흉내 내고자 어떤 마인드로 살면 다른 사람을 마이크로매니징하지 않게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남편은 정말 너무 싫어서 죽을 정도가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고 했다.
오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저런 나름의 기준이었다. <진짜 너무너무 싫은 게 아니면>이라는 기준이 생기니까 성질낼 일도 없고 너무 좋다. 이번에 이런 마음으로 여행 갔더니 한 번도 내가 짜증을 안 냈다. 짜증이 사실 별로 나지도 않거니와, 쪼꼬만 부정적인 감정도 저렇게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내면 더 커져버리기 마련이라 그냥 정말 싫은 게 아니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면 다 그냥 잊히고 지나간다. 예전엔 저 그러려니~ 하는 태도가 무심하고 시니컬한 마음으로 느껴졌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따뜻한 마음을 섞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연습을 가족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 모든 대인관계에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심이 넓거나 짜증이 안 난다기보다는 어떤 사람에게 내가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아 이건 좀 맘에 안 드네> 하고 내 안에서 그 사람의 그 부분의 불을 꺼버린달까, 이제까지는 좀 시니컬하게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랑 대화하거나 관계를 이어나갈 때 그 꺼진 부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 알고 싶지 않아! 보기 싫어! 하면서 불안감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받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어 항상 본인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친구가 있다고 하면 그 친구의 그런 면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아예 그 부분을 제외한 친구만을 내 경계 안에 들여뒀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났는데 연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회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혼자 집에 멍하니 있을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나중에 그 친구랑 만났을 때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내가 넘길 수 있을지 답도 없는 상상을 참 많이 했었다.
하지만 정말 싫어죽겠는게 아닌 이상 그저 따스한 맘으로 <그럴 수도 있지~>하는 걸 쪼꼼씩 연습하다 보니 굳이 다른 사람의 맘에 안 드는 점을 봐도 고개를 돌리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로 적자니 어렵지만 "휴" 하면서 체념하던 마음이 어이구~ 하는 이해의 마음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말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또 말을 바꾼다고 하던가. 생각만으론 닿기 힘들던 세상에 말로라도 그럴 수 있지~ 그러려니~ 하다 보니 어느새 생각도 그렇게 바뀌어 있다.
내 세상에서 우리 남편은 제일 훌륭하고 멋지고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도 내가 불평불만의 마음이 생기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싶다. 그리고 전에는 이렇게나 너무너무 멋진 사람인 우리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니, 나 너무 멋있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는데 요즘에 저런 이해의 마음을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멋져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도 물론 있겠고 소중한 마음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려니~> 해주는 그 마음이 요즘엔 조금 더 크게 느껴져서 우리 부부 사이에 더 단단한 고리가 생기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선해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걸 또 느낀다. 이 말도 우리 남편이 20대 초중반에 얘기해 줬던 말 같은데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가 아무리 좋은 성취를 이뤄내고 편안한 환경에 있어도 제대로 행복할 수 없단 얘기였다. 이럴 때마다 인간은 대체 얼마나 사회적 동물인 건가 새삼 감탄한다. 그러고 보면 분명 비슷한 결의 생각들을 연애 때도 했었고 그때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왜 유독 마음에 뚜렷하게 남는 걸까? 가족이란 건 뭘까? 그렇게 통제당하기 싫고 매니징 당하기 싫던 내가 기꺼이 먼저 조언을 구하고, 내 삶의 태도를 바꿔가고 싶어 하는 맘이 낯설고 신기하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나란 사람의 사전에서 "맞다, 틀리다"라는 말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다. 지금 이 마음을 열심히 연습하고 정착시켜서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그의 인생을 내 맘대로 빚어보려는 일은 꼭 없게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