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없는 나
색을 만들 때 고체 물감과 튜브에 든 액체 물감 그리고 아교와 물을 섞는다. 아교와 물은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조금만 둬도 분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색을 칠 할 때마다 붓으로 접시 바닥부터 휘휘 져어 올려야 한다. 물감이 고루 섞여야 얼룩 없이 깔끔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바디가 그리 길지 않은 민화용 붓은 머금고 있을 수 있는 물감의 양도 그리 많지 않다. 매번 색을 칠하기 전에 저어주는 일이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잊어버릴 때도 있고 내 생각으로 대강 휘휘 저어 칠할 때도 있다. 그럼 어김없이 얼룩이 생긴다.
마치 얼룩진 내 모습 같았다. 표면에 둥둥 떠있는 내가 결정한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나 자신도 건들고 싶지 않은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어두운 모습. 잘 섞여 색을 만들어내지 못해 때때로 얼룩진 내 모습.
그 번거로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 나에겐 때론 아플 수도 있는 과정을 거쳐 꾸준하게 내 모습을 성숙시켜 나간다면 나도 더 이상 얼룩 없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눈물 자국 없는 맑은 내 모습. 얼룩 없이 깔끔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때쯤엔 내 모습도 그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