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이토록 외로운 일이라는 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 그림을 완성시키려면 사람 만나는 날이 줄어든다는 당연한 것을. 직장인이라 주말엔 평일에 못했던 것만큼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어떤 주말은 출근하기 전까지 말 한마디 안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취미는 정말 나 같이 혼자 있는 걸 잘하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겠구나 싶다.
유명한 작가들의 SNS를 보면 좋아요가 쏟아지고 댓글도 잘 달린다. 작가의 흔적에 곧장 반응하는 사람들. 매일매일 또 다른 전시소식을 들고 오는 걸 보고 멋있다. 부럽다.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런 잦은 전시일정을 잡으려면 이미 몇 개월 전에 대관부터 시작해서 작업도 끝내놨을 것이다. 직접 해보니 알겠다. 유명 작가들이 가진 건 인기가 아닌 성실함이란 것을. 화실의 많은 선생님들도 그랬다. 전시나 아트페어를 앞두고는 일주일정도 밤새 작업하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일 년에 많으면 두 개 정도 표구를 맡기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수의 그림이 하루아침에 액자로 맞춰 나오곤 했다. 그림의 수가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보여준다. 한밤 중에 라이브를 켜고 아무 말 없이 그림 그리는 것만 보여주던 한 작가가 떠올랐다. 그 외로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과정은 아무도 몰라주는 시간이다. 충분히 잘 어울릴 것 같아 만든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감접시를 몇 번이나 설거지통에 빠뜨렸는지 모른다. 색깔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고민하는 시간들. 분채물감을 곱게 부수고 아교로 녹이고 튜브물감도 적당히 섞어가는 노동은 정말이지 나만 안다. 해본 사람만 안다.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지 않는 이상 매일 밤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즐겨야 한다. 퇴근 후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껏 그림에 몰입한다. 계획만 세우고 색만 만들다가 시간이 다 가는 날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노력을 온 체력을 다해 쏟아붓고 있다. 또 다른 전시를 준비하는 요즘의 나의 일상은 외로움이 가득하다.
외로운 것을 견디어야 하나 보다. 내 예술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