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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Apr 20. 2024

철들지 않으면 절대 공부 잘할 수 없어요

 “심부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聽而不聞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인데,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제대로 지식을 축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지식에 대한 목마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철듦’입니다.  철들면 공부를 잘할 수 있지만 철들지 않으면 그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습니다. 일찍 철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은 아이들이지요. 고맙고 예쁘죠. 공부가 재미있다면서, 아니 재미는 없지만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알아서 공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95퍼센트의 아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아이가 대다수입니다.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님들과 고민을 나누었지만, 안타깝게도 저 역시 철없는 아이를 철들게 만들 확실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군대 갔다 오니 철들더라’ ‘고생해야 철들더라’ 정도이지요. 그런데 어린아이를 군대 갔다 오게 할 수도 없고, 고생시킬 마땅한 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오랜 고민 끝에 ‘여행’을 찾아냈습니다. 여행은 철들게 만드는 괜찮은 방법입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은데 혼자가 어렵다면 친구 두세 명과 함께하는 여행도 괜찮습니다. 다만, 가난한 여행이어야 하고, 관광지 여행이 아닌 삶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이어야 합니다. 발이 부르틀 때까지 걸어야 하고 지쳐 쓰러지는 상황까지 가 보아야 합니다. 목마름이 시냇물을 들이켜게 만들고, 배고픔이 길가의 무를 질겅질겅 씹을 수 있을 때까지 가 보는 것입니다.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음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믿고 여행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여행하는 학생인데 밥 한 그릇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성숙하고 철이 드는 것이니까요. 노동 체험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성숙해 가는 존재이니까요. 도심을 벗어나면 비닐하우스 만나는 것 어렵지 않고 그 비닐하우스에는 거의 매일 일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땀 흘리는 것보다 인간을 성숙시키는 일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요즘 지자체마다 둘레길 많이 만들었더라고요? 3~4일 걷도록 하면 어떨까요?  혼자 여행이 불안하다면 아빠와 아들이 함께 떠나는 여행, 엄마와 딸이 함께 떠나는 여행도 좋습니다. 

 마음껏 쉬고 마음껏 놀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간이 아깝다고요? 해야 할 공부가 많은데 그럴 수 없다고요?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공부할 마음도 없이 책상 앞에 100시간 앉아 있는 것보다 공부해야 할 이유를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10시간 공부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개구리가 몸을 움츠리는 것이 더 높게 뛰기 위함인 것처럼, 2보 전진을 위해 과감하게 1보 후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여행도 시간 낭비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길게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도 철들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야단치기 전에, 왜 공부해야 하는지 부모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시는 것입니다. 수행평가 과제로 부모님 자서전 쓰기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임에도 상당수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부모님이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자서전을 쓰면서 처음으로 부모님의 과거를 알고,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들께서 들려주는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적잖은 깨달음을 줄 수 있고, 그 깨달음이 철들게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부모님의 과거가 오히려 아이들을 철들게 만들고, 부모와 자식 간 진솔한 대화가 아이를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배울 의욕을 고취시키지 않고 교육시키려는 교사는 차가운 쇠를 두드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부모님들 중에는 차가운 쇠를 두드리는 부모님들이 너무 많습니다.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먼저 철들어야 합니다. 철들지 않는 상태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 그 자체입니다. 변화 없이는 발전도 절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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