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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y 27. 2024

국어사전이 최고 선생님입니다

 독서의 중요성은 백 번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책만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자녀들에게 독서법(공부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지요.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자못 깨달았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백 번 천 번을 읽어도 오히려 읽지 않는 것이다. 무릇 독서할 때 늘 도중에 한 글자라도 의미를 모르는 내용을 만나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考察하고 세밀하게 연구硏究하여 그 근본 뿌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한 가지 책을 읽더라도 수백 가지의 책을 아울러 엿보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리義理(뜻과 이치)를 환히 꿰뚫어 알 수 있으니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누구든 거침없이 글을 읽어 내려갑니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일지라도 교과서는 물론이고 신문, 시험지, 심지어 박사 학위 논문을 읽어 내려가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과학적 문자인 한글 덕분이지요. 하지만 읽는다고 그 의미까지 이해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치원생이 신문을 막힘없이 읽어 내려간다고 해서 그것을 ‘읽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용을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어야, 그리고 읽은 내용을 남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글자 읽는 능력이 아니라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읽었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면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물의 참맛을 깨닫지 못함을 일컬어 ‘봉사 단청丹靑 구경하기’라고 하는데, 글을 읽기는 하였으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글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어휘입니다.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 문장이나 글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아이들은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읽어 내려갑니다. 사전 찾기 귀찮다면서, 또 시간이 아깝다면서 읽기를 멈추지 않고 그냥 읽어 내려갑니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내용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문맥을 통해 대충 넘겨짚거나 아예 모르면서도 그냥 읽어 내려갑니다.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읽는 것은 읽지 않는 것과 같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냥 읽어 내려갑니다. 

무슨 일에서든 기초가 중요합니다. 공부에서는 독해가 기초이고 독해의 기초는 어휘인데, 어휘력이 없다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당연히 지식을 쌓을 수도 없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도 《여매헌서與梅軒書》에서 “책을 볼 때에는 마음속으로 그 문장을 외면서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하여 찾되 주석註釋을 참고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窮究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석註釋은 지금의 사전 역할을 하는 어휘 풀이를 가리킵니다. 국어사전이 공부의 가장 기본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국어사전이 없습니다. 책상 위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가방 속에도 없고 사물함에도 없습니다. 영어 단어는 전자사전을 이용해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국어 어휘는 아예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수박의 겉만 핥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지요. 칼을 가져다주면서 스스로 잘라먹어 보고 수박의 참맛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지요.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알아서 글의 참맛을 알도록, 열 개를 대충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알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국어사전 없이 공부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창도 방패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행동이며 맨손으로 우물을 파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에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것은 사회적 약속 이행의 첫걸음이면서 학습의 기본입니다. 국어사전으로 부족하다면 백과사전은 물론, 한자사전까지 찾아 정확한 의미를 알아내야 합니다.

 ‘쓴 것이 약’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장은 싫거나 달갑지 않지만 실상은 그것이 도움이 되거나 좋은 교훈이 됨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전을 펼치는 일이 당장은 귀찮을 수 있지만 결국은 지식의 원천이 되어서 머지않은 훗날에 무엇보다 확실한 보약이 되어서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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