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래 교육을 지금 막 시작해 보시려는 분들께
교육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비단 활동지나 교재 개발이 전부는 아니다. design이라는 단어를 적용하고, 교육을 service라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서비스를 수혜받는 모든 이해관계당사자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사실상 특정 페르소나를 설정해서 디자인한다고 해도, 어쨌든 유연하게 더 많은 사용자가 활용가능하도록 유연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서비스=만족'이라는 공식이 적용되는 한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모든 이해관계당사자는 크게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교수자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학습자, 그리고 그 서비스를 연계하여 제공할 때 사용될 매체-혹은, 그 매체를 공급하려는 자-를 포함한다. 물론, 여기에는 투자자도 있고, 공교육의 경우에는 정부 부처가 포함될 수 있고, 어린 학습자의 경우에는 학부모라는 이중 소비자가 존재하기도 하며, 과거에는 많은 경우 교수학습자료를 교수자가 직접 고안했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와 수단 개발의 주체가 겹치기도 했다. 그러나 근간에는 많은 경우 이 당사자들이 굉장히 세분화되고 있다. 더욱이, 교육의 수단이 되는 매체나 기반이 되는 철학을 교육이 아닌 다른 더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에서 가지고 와서 적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교육의 큰 방향성을 대표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 흔히, 우리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교육적 시도에서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고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교육의 미래지향적인 방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 닥쳐 있는 미래적 요소와 교육의 기술적 결합에 대한 두려움, 어려움, 막연함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일테니까. - 교수자는 과거의 방법을 배워서 현재에 적용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고 학습자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있다. 기술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진보하지만, 기술이 그릇이라고 할 때 거기에 담는 내용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매체를 개발하는 사람은 최신 기술을 연구 개발하기 급급해서, 그 안에 담을 콘텐츠와 그로 인해 발생할 서비스를 연구 개발하는 데 투자할 시간과 금전의 여력이 없고, 많은 경우 기존의 콘텐츠를 그대로 컨버팅해서 담는다. 여기에는 정부의 지원금과 기간, 그리고 이를 제공하기 위해 평가하는 기업의 계획서에 대한 기대치가 큰 작용을 하기도 한다. 기술은 진보하였으나 내용은 그대로이니, 기대했던 교육적 효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실험과 대표적인 집단에서의 시범적인 적용을 통해 전체 개발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막상 전체에 적용했을 때에 그 때와 같은 효과를 얻기는 정말 어렵다.
국내에서 2위 간다고 하면 서러워할, 유명 방문 교육 업체와 내가 속한 작은 로봇 기업에서 기 개발한 가정용 소형 로봇에 들어갈 영어 교육 서비스를 만들어 시범 서비스를 적용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1년여의 국가 지원 개발 프로젝트에서 이미 반 가까이가 지나간 상황, 3개월 동안 경력 10년 이상의 교육용 콘텐츠 기획자들이 5명이나 '로봇 교육 서비스'의 장벽에 부딪혀 관둔 시점에 내가 합류하였다. 교육 업체에서 가지고 있던 스테디셀러 영어 교육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는 단기간의 프로젝트였다. 수백 차시에 이르는 양적 개발 기간과 현장 테스트 기간까지 포함한 1년이었기에 로봇 미디어의 리터러시와 영어 교육의 특징을 결합한 새로운 인터랙션 모델, 교육 서비스 디자인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스카웃 당시에 로봇의 가능성으로 설득받아 이직한 상태였고 로봇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굉장히 고무적이었을 때라 나는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었다. 하지만, 엔지니어와 콘텐츠 제공자 사이에서 나는 코디네이팅에 실패했다. 그들은 기간상 빠르게 컨버팅해서 콘텐츠를 탑재하고 프로젝트를 기간 내에 마무리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 영어 교육 콘텐츠는 오디오 베이스였다. 그래서 나는 로봇과 학습자 간의 인터랙션을 단순하게 모듈화하고 이를 대화 시나리오에 적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즉, 기존의 오디오 파일 재생 도중 시나리오 상 로봇과 학습자의 예상 대화 시나리오 중간중간 로봇이 학습자의 대사나 모션을 알아채야만 넘어가게 대기 상태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퍼실리테이션과 관계 있다. 발상을 촉진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각 경우의 수에 따른 로봇이 감지한 학습자의 반응에 따라 로봇이 간단히 답변하고 이후의 진행 사항은 동일하게 가는 방법이다. 어린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로봇이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1개월에 1개 로봇을 일종의 '말'로 하는 대형 보드게임을 개발했다. 원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대세일 때라 물론 하나의 보드판에서 여러 방법으로 게임하도록 만들었고, 학습 목표를 실었으며, 각 보드게임은 보드판 유형도 다양하게 개발했다. 보드판에서 로봇이 이동하면서 보드게임을 하고 로봇의 움직임을 트리깅하는 일종의 주사위 역할은 로봇과 연계된 안드로이드 전화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로봇과 학습자의 언어적인 대화를 통해 게임적 요소를 이어갔다. 전체 콘텐츠에 대한 반영이 아니기에 거기까지는 더 새로운 기능 제안을 포기하고 반영되었지만 이후에, 교육 회사에서 요구한 것은 당시 유행했던 '흘려듣기' 기능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로봇을 다시 오디오 플레이어로 퇴보시키는 작업이었다. 나는 이것도 과도기라 생각하고 참여해 중간중간 해외 전시회 출장을 다니면서도 밤샘 작업을 거쳐 기간 내에 이를 마무리 했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업이었고 이어서 다른 대형 교육 업체와의 콜라보를 준비하면서 로봇을 활용한 동화에 대해 연구 개발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었다. 로봇이라서 갖는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프로젝트 마무리 후 콘텐츠 업체도 우리 회사도 지속적인 서비스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일에 덜 열정적이었다.
이에 앞서서 다녔던 로봇 회사에서는 교육 서비스와 콘텐츠의 맞춤형 개발에 대한 지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콘텐츠와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서 판매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 회사에서는 개발비를 발주처에 대놓고 전가하려고 했다. 한번은 디즈니 랜드 본사에서 흥미를 가지고 회사를 방문하여 우리가 만든 영어 교육 보조 교사 로봇을 안내 로봇으로 만들어 사가고 싶다고 했었다. 나름 열심히 영어로 데모 콘텐츠를 시연하고 그들의 열렬한 반응에 어깨가 으쓱해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로봇을 대당 3천만원에 판매하고자 했고 디즈니 랜드에서 별도로 비용을 대면 맞춤형 서비스와 콘텐츠를 개발해 주겠다고 하였다. 디즈니 랜드는 대당 3천만원에 서비스와 콘텐츠 적용 비용도 포함해 주면 10대를 구입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점점 교육용 로봇 개발 프로젝트는 회사 사업에서 비중이 적어져만 갔다.
아이패드가 출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아이패드의 화려한 가능성을 모두 담아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인터랙티브 동화 콘텐츠가 있었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멋진 삽화에서 앨리스가 커지고 작아지고 물약을 먹이고 독자가 동화 속으로 몰입되는 듯한 기능들이 구현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그 콘텐츠를 보지 않았다. 그냥 재미로 이 기능 저 기능을 탐색해 볼 뿐이었다. 그것은, 플롯의 전개와 기술이 제대로 결합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전개와 인터랙션 기능이 별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랙티브 동화 콘텐츠의 시장성에 관심을 갖는 성인은 열심히 탐색해 볼 콘텐츠였지만, 당장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준은 못 되었다. 앱 개발에 관심있는 개발사들은 처음에 우왕좌왕했다. 직접 잘 알려진 동화를 재화해 보았고, 동화 작가를 고용하여 기술적인 측면을 알려 주고 콘텐츠 개발을 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시적으로 '~~하세요'라고 전달했을 때 학습자가 문제를 풀고 지시를 수행하듯 인터랙션을 활용하거나, 이야기의 전개와 콘텐츠와 사용자의 '인터랙션'을 고려하지 않은, 기존 콘텐츠 컨버팅 후 흥미 위주로 인터랙션 기술 배치로 인해 인터랙티브 동화 콘텐츠에서 연구자들이 기대했던 기적같은 교육적 효과나 극대화된 콘텐츠 효과는 일어나지 못했다. 대형 교육 업체의 한 곳에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화책 시리즈를 컨버팅해 빠르게 앱으로 출시했다. 대표 무료 콘텐츠로는 '방귀쟁이 며느리'를 실었는데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야기의 전개와 관계없이 며느리의 엉덩이만 누르면 아무 때나 며느리는 큰 소리와 함께 우스꽝스럽게 방귀를 뀌어댔는데, 동화 콘텐츠는 그대로 오디오로 흘러 가고, 인터랙션은 삽화처럼 (그림책의 글과 그림 같은 관계도 없이)따로따로 배치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해당 콘텐츠는 브랜드 값으로 제법 소비자의 구미를 당겼고 아이들은 재미있어했다는 체험단 후기가 있었음에도 얼마 지나고 나니 아이들은 흥미를 잃어 버려서 이 분야의 발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몰입하게 되고 다른 콘텐츠에도 관심을 갖게 하려하면 동화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누가 직접적으로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한번 앨리스에게 물약을 먹여 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물약을 먹이는 인터랙션을 실행하게 되거나, 물약을 먹였을 때의 반응이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싶은 트리거 역할, 혹은 이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를 통해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거나 하는 전개가 필요하다. 이야기의 진행에 꼭 필요한 요소에 기술적 요소가, 적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많은 경우, 빠르게 컨버팅해서 시장 선점하는 데만 다들 목말라 있었다. 오너나 투자자와 대화할 때, '우리 거 이미 해 놓은 거 그거 있잖아, 그거 가지고 와서 넣으면 되겠네.'라는 반응이 나오면 나는 그 때부터 다른 머리를 궁리했다. 비용과 시간이 안 드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매체에 특화된 콘텐츠로 변모시킬지에 대한 일종의 잔머리였다. 이 외로운 투쟁은 엔지니어들로부터도 많은 저격을 받았고, 마케터들로 부터도 항의를 받았다. 나는 그럼에도 '상용화'가 지속성과 발전 가능성을 포함한 '상용화'가 되려면 이런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를 갈아넣었던 것 같다.
비단 콘텐츠와 서비스의 개발에서만 이런 부분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관심 있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교실 구현'인데, 이를테면 우리가 생각하는 특정 미래 기술이나 미래적 사고를 적용한 콘텐츠의 '교실 구현'을 말한다. 물론 교실에서 실행하면 교실 구현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교실 구현'이란, 애초에 가지고 있던 교육적 목표와 우리가 활용하고자 하는 수단의 특화된 측면이 그대로 녹아 있는 제대로된 교육의 실현이다. 보편 교육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바로 직접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가능하도록 가르칠 것인가부터의 고민이 그 발단이 될 것이다.
대형 기업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실 구현을 위해서 초반에는 내가 직접 시범 교육을 했다. 시범 교육 과정에서 필요한 교재와 부교재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적용해서 진행했다.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콘텐츠의 방향성이 다듬어 졌다. 기업에서 제공한 재화를 활용해서 만들어진 콘텐츠이니 기업에서는 내가 이 산물을 바로 제출해 주기를 바랬다. 열심히 투쟁하여, 기업에 맞춤형으로 다시 개발해 줄 기회를 얻었다. 기업에서는 이제 콘텐츠와 시범 적용이 끝났으니, 바로 강사를 양성하거나 교사를 연수해 주기를 원했다. 콘텐츠를 만들었으니, 콘텐츠만 지도서와 함께 제공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문의도 있었다. 나름의 이론적 베이스를 갖추어서 수강생들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었다. 연수를 진행하고 강사를 양성하면서 왜 그런지 몰라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그런 강사들이 더러는 있었지만. 그리고 이 교육의 효용성을 설득도 해야 했다. 기업은 이 비용과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콘텐츠를 같이 쭉 한번 해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위험한 사고들과 또 나는 십년 가까이 외롭게 맞서왔다. 기업은 콘텐츠와 장비를 공급해야 하니, 연수에 관련한 비용은 거기에 녹이거나, 국가 비용을 끌어와서 부담해야했으므로 갈수록 연수 시간은 짧았다. 물론 교사들이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십 년 간의 경험에 따르면 짧은 연수를 마치면 추가 연수 요청이 오거나, 피드백에서 불만이 나오는 경우가 이걸 더 길게 연수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인 경우가 허다했다.
이 글에 앞서 몇몇 잡글을 끄적이는 동안 - 물론 그 글들이 앞으로 이 연재의 바탕이 될 것이다 - 독자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 글은 기술 서적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글이 되었으면 한다. 코디네이터로서 교육 서비스를 디자인해 오면서 여기에 연계된 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들과의 소통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되어야 할 의식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려는 사람, 그리고 미래 교육을 시작하려는 교사, 그리고 미래 교육의 진정성이 궁금한 학부모, 그 모두가 함께 읽었으면 한다. 아마 대상이 폭넓어 맞춤형 글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의식 전환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면, 그 때 가서 내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각 당사자들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글도 써 내려갈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강의를 들으러 온 성인들에게도 늘 강조하지만, 본격적으로 코딩 스킬을 익히고 싶다면, 3D 모델링 기술을 익히고 싶다면, 기술 강좌를 들으러 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코딩 교육'이 궁금하다면, '메이커 교육'이 궁금하다면 잘 찾아왔다고 말이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나는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세웠다. 우선, 무엇을 하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 내가 있는 분야의 내용을 글로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읽고 쓰는 것이 좋았던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려는 어른들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내 인생의 절반쯤 지났을 때의 나는 상당히 어린이에 가까운 어린 어른이었다. 동심이 살아 있었고, 아이들보다 더 아이들처럼 놀았으며, 아이들과 늘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장점으로 삼겠다고 생각했다. 방정환 선생이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고 했던가. 나는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어린이를 성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이후 다음 20년 동안은 이를 위한 경험과 연구의 기간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이론가들 사이에서 공부중이다. 내가 아이에 가깝다보니 성인과의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다. 문학과 언어 교육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20대의 나는 언어와 함께 살면서도 정작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과는 너무도 잘 통했다. 나는 나의 문학과 언어 교육을 눈과 입과 귀를 열어 마침내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쯤 뒤, 로봇을 만났던 20대 끝자락에서, 나는 그 수단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로봇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건, 나의 멘토였던 사람이 나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너는 왜 계속 로봇을 할 거냐고.
이런 나의 비전과 목표를 끌고 온 나의 모토는 탁상공론 금지, 언행일치이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순간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면 그 때 그 때 수정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의 이 모든 것들은 그닥 새로운 게 없다. 내가 가진 창의성에 대해, 스스로도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를테면 콜럼버스 같은 사람이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운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고 시도하지 않았던 그것이다. 그렇기에, 사업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막상 현장에서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을 만났을 때, 아, 미래 교육이 이런 식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해보아야 겠다는 반응을 많이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 한번도 일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척 많지만 한 번 일해 보았다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처럼.
이제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20대 초반 내가 세운 내 인생의 방향을 다음 20년동안 풀어내는 초석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미래 교육을 시작하려는 많은 어른들에게, 그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거나, 교육을 하거나, 양육을 하거나 모두에게 미래 교육이 이것만 알면 별 것 아니라는 내 마음의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려는 여러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