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5
벌써 300일.
열 달이 지났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어떤 기억들은 하루 만에도 사그라들고, 어떤 기억들은 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좋은 것만 기억하며 살고 싶은데 왜 더 힘들고 슬픈 일이 기억에 오래 남는지는 도무지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나보다 먼저 간 사람을 잊는 게 어렵다는 건 알겠다. 꼭 력사가 아니더라도,
저기까지 쓰고 먼저 떠나간 친구들의 이름을 쓰다가 다 지웠다.
기억하는 이가 있다는 건 죽은 이에겐 위안일까? 장례도 제사도 다 사실은 산사람을 위해 지내는 건데, 이게 또 한편으로는 산 사람을 갉아먹는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도 산사람의 살고자 하는 방도일 텐데, 그 기억이 산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니까.
난, 다행히 잡아먹히진 않았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도 작고 깊고 깊은 항아리가 있어 그 안의 것이 몰래몰래 기어 나올 때가 있는 것뿐이다. 좋은 기억으로 잘 덮어두면 괜찮을 텐데, 좋은 기억은 왜 이리 휘발성이 큰 건지 원.
여튼, 열 달 사이 신상에 큰 변화는 없다. 뭐든, 변화가 없어서 좋다. 좋은걸 거다. 력사 1주기(그러니까 65일 후 인가 보아)에는 소소하게 뭘 할지 생각 중이다. 간만에 좋은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는 자리가 되길.
아. 그나저나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에게 력사의 소식을 알렸어야 하는데,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다.
이건 정말 슬픔이 아니라, 국어의 문제인데, ‘죽었어’는 너무 가볍고, ‘사망했어’는 이상하고, ‘떠났어’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돌아가셨어’, ‘고인이 되었어’라고 할 순 없잖아-_-
혼자 한바탕 훌쩍이다 말고 국어 바보 모드가 되어버렸다. 뭐 어때. 이런 글은 이러라고 있는 거임.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