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디D Jun 17. 2022

다음 주면 력사의 1주기다

220604

다음 주면 력사의 1주기다.


벌써 1년이고, 어느새 1년이지만, 아직 1년밖에 안된 일.


나는 다행히(?)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디테일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지난 1년간은 정말 안타깝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요즘엔 이 망할 핸드폰 사진씨와 페북씨가 "1년 전의 오늘" 어쩌고 저쩌고를 맨날 알려줘서 예전보단 좀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긴 했.......


보통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스케쥴러를 보곤 하는데, 력사의 요양병원 퇴원 이후 장례식 사이에는 구체적 기록이 그다지 없다. 사실 그 사이에 나에게 있었던 일정들(강의, 회의, 마감) 뭐 이런 것들이 있고, 내 기억에 대부분의 회의는 불참했고, 약속은 어그러졌고, 유일하게 지킨 건 6/4 서퀴부스자료마감 이었을 것 같다. 으하하-_-; 아. 그리고 그 와중에 집을 보러 다녔고, 지금 사는 집 계약도 했다.


여튼, 벌써 1년이다.


1주기를 맞아서 처음엔 거창한 이벤트도 생각했고, 무슨 전시회도 생각해보고, 어마어마한 뭣도 생각해 보고 그랬는데, 현실을 직시(나는 바쁘다, 제사만 해도 일이 많다, 기획해서 행사 하나 더 진행하는 건 노동이다 등) 하며 걍 제사+ 단체 력사 방문만 하기로 했다.


제사는 6/10에 가까이 사는 친구 몇 명과.

력사 방문은 6/11에 원하는 사람 모두와 함께 할 예정이다. (원하는 분 연락 주시면 몇 시에 만날지 공유할 수 있음다)


생각해보면, 지난 1년간 력사와 만나온 시간보다 매일 력사를 생각하는 비중은 더 컸던 것 같고, 력사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도 더 길었던 것 같다.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했고, 동성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력사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력사가 떠나자마자부터 새 연애와 새 연인에 대해 낄낄대며 떠들었지만, 사실은 연애도연인도 적극적으로 원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다고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뭔가 이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든 것은 혼돈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혼돈이다.


(처음에도 력사가 떠나고 내 삶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살아보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살긴 하겠다는 것만은 여전히 확실한 듯하다. 신기하구로.


아.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그래도 삶은 흘러간다"는 말이 매우 더 진심으로 와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앞둔 파트너 곁에서 쫓겨날까 두려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