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A 자격증 취득하기
시드니 관광지도 많이 다녀봐서 그런지 이제 또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집 앞을 서성이다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는 고급지면서도 단아한 일식당을 발견했다.
카페일은 해봤으니 레스토랑은 어떨까 싶어 즉흥적으로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밖에는 waitress wanted이라는 문구가 없었기에 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
식당 안은 대나무로 시원하고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다.
입구는 Bar로 각종 일본 술이 비싸 보이는 병에 들어 전시되어있었고 그 술병들 앞에는 전형적인 일본인 외모를 가진 눈이 작은 안경 낀 아저씨가 기모노를 입고 서 계셨다.
갑자기 호주에서 일본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다.
Are you looking for staffs? "직원 구하세요?"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YES! 였다.
매니저라는 일본인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그렇게 우리의 즉흥 면접은 시작되었다.
아주 화통해 보이는 분이시다. 우리 이모를 닮아 더욱 친근했다. 웃음이 많은 나는 웃음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매니저 아주머니가 나랑 웃음코드가 딱 맞아떨어져 우리는 면접 보는 내내 계속 웃었다.
근무시간은 내가 오페어 일을 마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7시 30분부터 마감까지로 정했다. 9시 반에서 열 시 사이.
비록 일하는 시간은 엄청 짧지만 근무조건이 너무 좋았다.
내게 저녁식사도 제공해준다고 했다. 내가 이 가족들과 있으면서 가장 큰 문젯거리가 저녁식사였는데 정말 하늘에서 선물이 툭하고 떨어진 것만 같았다.
내게 메뉴판을 주시며 외워오라고 숙제를 주셨다.
그리고 RSA 자격증이 있어야만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얼른 취득해오라고 했다.
RSA 란, Responsible of Service of Alcohol의 약자로 손님에게 주류를 제공하는 지식과 기술을 성공적으로 교육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이다. 일종의 주류 취급 면허인데, 호주 내 주류를 판매 제공하는 모든 장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격증이다.
거참.. 서빙하기 힘드네........
그래서 갑작스럽게 나는 RSA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이래저래 알아보다 결국 120불을 주고 수업을 예약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시드니의 시티는 정장을 입고 서둘러 출근하는 호주 사람들로 붐볐다.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며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학원에 도착했다.
학생들 대부분이 호주인이다.
에휴~ 한숨만 나온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 곳에서도 동양인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호주에 이제 막 도착한 한국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엄청 낯을 가리고 쑥스러워했다.
남자 선생님은 호주 특유의 억양과 빠른 스피드로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나는 정신이 나갔다. 뭔 소리야 도대체.... 가장 필요한 영한사전도 두고 왔다.
반포기 상태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옆에 앉은 스웨덴 친구가 영어를 잘할 것 같아서 괜히 친한척했는데 그녀도 답을 알진 못했다. 실망스럽게도...
점심시간에 나는 남아프리카 출신 친구와 급 친해졌다. 조숙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직 19살이라고 해서 너무 놀랬다. 나는 이것저것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이 친구에게 물어보고, 커닝도 조금 했다.ㅋㅋㅋㅋ 고맙게도 그녀는 처음보는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시험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모두가 한줄을 섰고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한 명 한 명의 시험지를 채점 하셨다.
선생님은 모든 문항을 다 맞았다고 체크하셨다. 그 어떤 답을 썼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 딸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토록 쫄아있었단 말인가.
돈 주고 사는 자격증인 셈이다.
아무튼 혼자서 이런저런 모험을 하니, 열린 가슴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용기를 내서 도움을 청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