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부른 화
우리 엄마는 옷 욕심이 많다. 그래서 옷장에는 안 입는 옷들이 넘쳐난다.
헹거에 숨 쉴 틈도 없이 빽빽하게 걸려있는 옷들이 안타까웠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그 광경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엄마에게 안 입는 옷들을 빼 달라고 했다.
당근 마켓에 싸게 팔기 위함이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들도 많이 보였다.
뭐가 묻어 있는 옷들은 깨끗하게 세탁을 하고 구겨진 옷들은 일일이 다림질을 해서 새 주인을 찾아 나섰다.
어떤 아줌마가 여러 가지 옷을 다 같이 구매하겠다고 했다.
흥정의 달인이다. 7~8천 원, 만원에 올려놓은 옷들도 아무렇지 않게 다 오천 원에 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고민이 되었다. 절반을 깎아달라는 건 좀 무리한 요구인것 같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이 구매하니 인심을 써서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다. 만원이 넘는 금액을 할인해준 셈이다.
개중에는 무료 나눔 하는 옷도 있었다.
그렇게 12개의 옷을 사 가지고 갔다. 후련했다. 며칠 묵은 변비가 해소된 느낌이랄까?
그런데 얼마 뒤, 연락이 왔다.
시작은 이러하였다. 무료 나눔한 옷에 뭐가 살짝 묻어있다고 한다.
기분이 살짝 상했다. 무료 나눔한 옷을 걸고 넘어지다니..?
그런데 옷 두 개에 뭐가 더 묻어있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보내왔는데 옷 색상이 전혀 달라 보였다.
왜 색깔이 다르냐고 했더니 LED조명이라서 그렇단다.
분명히 나는 옷을 종이가방에 넣기 전에 몇 번이고 확인을 했었다.
마지막 스팀 다림질을 하면서 옷 상태를 확인했었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옷들은 다 새 옷이라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이었다.
12개의 옷을 오만 원에 가지고 갔다. 절반이상이 새 옷이고, 질이 좋은 옷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저런 식으로 컴플레인을 걸며 환불을 요구하는데 기분이 안 좋아졌다.
분명 옷에 뭔가 묻어있었더라면 못 본건 내가 잘못한 거다. 그런데 그 사람 심보가 너무 도둑놈 같았다.
오만 원에 12개를 사 가지고 가놓고 갑자기 두 개 환불하고 싶다며 만원을 돌려 달라고 했다.
하나에 오천 원이라며, 참 이상한 계산법이다.
살 때는 여러 개를 사는 조건으로 할인을 받아놓고 환불받을 금액은 흥정 전 가격을 요구하니 갑자기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렸다.
내가 만약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 같다.
하지만 뭐 사람마다 다 다르니 할말은 없다.
나는 기분이 안 좋아서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왜 내가 지금 기분이 이렇게 안 좋지?
며칠 내내 옷 파는 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나름 좋은 옷을 팔려고 노력했는데 사실상 내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거론하며 환불을 요청한 게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그걸 놓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겠지.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생리중이라 예민보스다!)
또 비싼 옷을 싼값에 사놓고는 본인이 얻은 건 생각하지 않고 잃은 것만 생각하는 것이 얄미웠을 것이다.
내 옷은 오천 원에 사가면서 정작 본인이 판매하는 상품을 보니 몇백 개가 되는데 하나에 최소 15000원에 올려놨다. 그러니 더욱더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옷을 싸게 사놓고 비싸게 파는 건 아닐까?
그러다 아차 싶은 순간이 왔다.
그랬다. 결국 내가 화가 난 가장 큰 이유는 이 사람 입장에서 그가 얻는 것에 집중을 했더니, 이 상황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나만 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서, 어차피 안 입고 옷장에 묵혀두던 옷이었다. 버렸으면 하나도 가치가 없을 뻔했던 옷을 필요한 누군가가 몇천 원이라도 주고 사고 간다면 내 입장에선 오히려 좋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판매를 하는 목적이 잠깐 변질되어 버렸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생각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냥 환불해주고 나면 끝인데 안 해주려고 끙끙 대다 보니 나만 힘들어졌다.
결국 욕심이 부른 화였다.
그 아줌마도 욕심을 부렸고, 나도 잃지 않으려 욕심을 부렸다.
그냥 더 베푸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어차피 안입는 옷이니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