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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Jan 05.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 #5

나는 어마 무시한 태권도 유단자(1)


당시 A회사에는 우리  외에 2~3  정도가  있었는데, 보통 게임 회사에서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인원  대부분을 다른 팀으로 옮긴 다든지 아니면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식으로 인력 관리를 한다. 물론 해고시키기도 하지만.  내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개발이 중반을 넘어 서고 있을 때쯤 슬슬 다른 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레오는 나와 같은 3D 디자이너로 가장 먼저 다른 팀에서 우리 팀으로 합류한 디자이너였다. 키가 안드레만큼이나 크고  마른 체형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레오는 이탈리아계 사람으로 나보다 A 회사에 먼저 입사했다. 팀의 가장 막내로 수줍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때문에 친해 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침마다 그에게 인사를 하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을 했지만 결코 본인이 먼저 인사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  때문이었을까 레오는 안드레와 단짝처럼 지냈다. 극도로 낯을 가리는 레오와 심장이 없는  같은 안드레의 조합은 언뜻 보기엔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어 보였지만 둘의 케미는 아주 좋았다.  21살의 레오와 26살의 안드레는 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눈에  없이 어려 보이기만 했다. 틈만 나면 덩치 커다란 둘이 붙어 앉아  키득 거리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보고 있자면 마치 고등학교 교실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다른 팀 원들과 카페테리아에서 먹고 난 후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안드레와 레오가 나를 불렀다.  
[미아, 너 다음 주부터 다른 팀 디자이너 중 마틴이 우리 팀으로 오는 거 알고 있어?]
[아니. 마틴이 누군데?]
레오는 마틴이 전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 하던 3d 디자이너이고 다음 주부터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해 줬다.
[그런데?]
이번엔 안드레가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계획을 세웠는데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해.]
[내 도움? 뭔데? ]
둘은 장난스럽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할 거야? 말 꺼야?]
[뭔 줄 알아야 할지 말지를 정하지.]
안드레는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씩 웃어 보이더니,
[우리가 마틴한테 네가 태권도를 진짜 잘하고 한 대 맞으면 기절할 정도로 세다고 말을 할 거야. 만약 마틴이 너에게 진짜 나고 물어보면 너는 그냥 그런 척하면 돼. 간단하지?]
[뭐라고? 나 태권도 못하는데.]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태권도 도장 근처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생각 외로 유치한 발상에 허탈한 한 숨을 내 쉬며 그 둘을 쳐다보았다. 레오와 안드레는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문득 둘 중 누가 이런 바보 같은 아이디어를 끄집어냈을까 궁금해졌다.  
[누구 아이디어야?]
나의 질문에 둘은 우물쭈물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너희 정말 그 바보 같은 이야기를 마틴이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왜 아냐? 당연히 믿을 거야.]
[너희들 바보냐? 점심시간 내내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 이거지?]
[미아, 마틴은 이제 막 이 팀에 합류한 신입이라고 너는 선배로서 뭔가 보여줘야 해. 이 팀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
레오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ㅎㅎㅎㅎ 의도는 알겠는데 마틴은 나보다 이 회사에 먼저 입사했어. 엄연히 선배는 그 라고 내가 아니라.]
딱히 치밀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계획이었지만, 점심시간 내내 이 계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고심했을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동참하기로 했다.  
[알겠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틴은 절대 속지 않을 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레오와 안드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국에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은 기억이 있다. 이소룡의 영화 때문에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무술에 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게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막상 겪고 보니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그냥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에 별 다른 관심이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지만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해 (일본 제외)
상상 그 이상으로 관심이 없다는 데에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예전 동료 중 한 명은 한국이 섬나라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정보는 간단히 키보드만 두드리는 수고 정도면 얻을 수 있는 이 마법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보면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 계획에 대해 거의 잊어버릴 때쯤 마틴이 새로 우리 팀으로 합류하게 되는 그 날이 왔다. 아침 미팅을 마치고 1시간쯤 후  마틴은 새로 배정받은 자리로 가져온 짐들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레오가 수시로 그의 곁을 어슬렁 거리며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아무래도 레오가 계획을 실행 중 인 듯 보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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