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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Mar 16.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15

너 나 잘해라 제발...

[나는 이곳에서 희망이 없어. 회사에 오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내 뒤편에 앉아 같은 3D 배경일을 하는 쥴리앙이 아침 인사에 이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관자놀이에 댄 채 말했다. 그가 이렇게나 절망적인 인사를 건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급하게 잡힌 회의 때문에 회사에서 가장 큰 회의실에 모였다. 여러 프로젝트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회의실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 거려 자리를 잡기 힘들었다. 모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나자 올리비에가 회의를 가장한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게임 업계에서 일해 온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일을 하면서 유튜브나 동영상을 보는 행위가 이상해 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아요. 우리는 영상 예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들의 업무 태도에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그렇다. 게임 업계에서는 일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며 아니면 영상을 보면서 일을 하는 작업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용인을 하는 회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지만, 스케줄만 잘 맞추고 일에 지장이 없다면 대부분 회사에서 영 내키지는 않지만 묵인을 해 준다. 다른 업종에 비해 업무 환경에 대한 규율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 중 한 명은 은행원이었는데 그는 게임 회사를 보고 근본이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편안한 차림으로 회사를 다니는 나를 보고 제발 회사 다니는 사람처럼 정장 좀 입으면 안 되냐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회사를 다닌 다고 말은 하는데 늘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고만고만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가 회사 같지 않아 보였나 보다. 올리비에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렇지만 올리비에의 말을 이어받아 작업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안토니오는 분명 선을 넘었다.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우리를 무능하고 쓸모없는 사람들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것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그의 말에 따르면 모두 작업자들의 탓이었다. 그는 또다시 큰 스크린에 본인이 정한 업무 프로세스를 세세하게 하나씩 설명하며 이렇게만 따른 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B 회사에 있으면서 한 회의 중 가장 최악의 회의였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삼삼오오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자리에 돌아와 앉는 사람들 모두 불만 섞인 말들을 토해냈다. 특히 쥴리앙은 불쾌한 감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내 평생 가장 거지 같은 회의였어. 내일 당장 면담 요청할 거야. 본인이 한 잘 못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에 있던 디렉터와 일 할 때는 정말 좋았는데 저 자식이 온 후로는 모든 게 엉망이야.]
쥴리앙의 말처럼 사람들은 안토니오와 올리비에가 없었던 때를 그리워했다. 나는 아쉬운 한 숨을 짧게 내 쉬며 말했다.
[그러게. 남편이 나에게 회사를 추천했을 땐 지금 과는 아주 달라 보였는데. 거짓말했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쥴리앙은 씩 웃으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네가 너무 늦게 왔어. 좋은 시절은 다 간 것 같거든.]

쥴리앙은 그가 약속한 대로 다음 날 안토니오와 면담을 가졌다. 30 분 가량의 면담을 끝나고 나온 그가 한 말은 이러했다.
[말이 통하질 않아. 계속 저 오만한 자식 헛소리 듣기 싫으니까 준비가 되는 대로 회사 나갈 거야. 당장 오늘부터 옮길 회사 알아볼 거야.]
그 후 한 달 정도 후에 쥴리앙은 정말 회사를 나갔다.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 던 그가 퇴사 소식을 알리며 기뻐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그 후에 이어질 줄퇴사의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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