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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 사진 그리고 글

by 최용훈

플레이스토어에서 앱을 하나 깔았다. 첫 부분의 광고를 지우는 잠깐의 수고를 거치면 끊임없이 예전의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그 익숙한 노래들을 듣다 보면 그때의 거리와 사람들과 계절이 속절없이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손을 맞잡고 내 마음속에 뛰어드는 환상을 일으킨다. 분명 노래는 지금처럼 들려오는데 그 시절이 수십 년 전이라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노래는 끊을 수 없는 시간의 다리이다. 현재와 과거를 이어 수십 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내게 쏟아붓는다. 그러면 나는 문득 외로워진다. 가슴 한 편에 애달픈 기억들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얼른 화면을 닫는다. 왜 추억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옛 시간을 지우려 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눌러 과거의 노래들을 듣는다. 여전히 친숙하고 저절로 함께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 소리를 높여 한바탕 부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흔적을 깨닫는다. 그때의 소리와 노랫말이 나의 정서에 더 가까운 것을 어찌하겠는가. 젊은 세대들의 노래는 세련되게 들리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젊은 참가자들이 옛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세대 간에 벌어진 그 감각과 감정의 거리보다는 노래를 통해 공명하는 원초적인 감정의 교류를 느낀다.


사진 역시 다르지 않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찍혔더라도 얼핏 보고 지우기가 일수이다. 가끔 내 생각보다 훨씬 멋지게 나온 것도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휴지통에 버려진다. 가짜 같아서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모습과 상황이 현재처럼 다가오는 것이 불편해서이다. 예전에는 사진을 컴퓨터에 저장할 수 없었으니 대부분 인화해서 앨범 속에 담아두었었다. 몇 차례 이사도 하고 정리도 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몇 장의 사진이 여전히 서랍 속에 담겨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그때가 마치 현재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시절이 너무 멀리 있고,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불현듯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서 사진을 덮는다. 과거와 현재가 혼돈 속에 빠지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련 같은 과거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가끔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러 해 전에 써둔 글을 읽는다. 사실 나는 한 번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왠지 어설프고 유치했던 생각의 빈곤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은 노래나 사진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마치 당돌하지만 당당한 또 다른 인격체와 마주하는 묘한 반가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굳이 과거를 떠올리지 않아도 생소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누고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느낌이다. 세월이 흐르면 과거의 생각이나 글들이 유치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의 발견과도 같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나는 성숙보다는 노회함을, 열정보다는 나약한 포기를, 무모함보다는 비겁한 회피를 느낀다. 그래서 이전의 글들은 잊혀서 내 안 깊숙이 묻어두었던 또 다른 자아를 맞이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온 날들의 장막을 열고 그 안을 엿보는 일종의 즐거움 안겨주기도 한다.


현재는 과거의 퇴적물들이 층층이 쌓여 만든 새로운 지층이다. 오랫동안 그 아래 생성된 수많은 기억과 회한과 그리움을 덮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나이테처럼 돌고 돌아 수많은 가지와 잎과 열매들을 보아온, 묵묵하게 서있는 키 큰 나무와 같다. 조금은 허허롭고 가끔은 외롭기도 하지만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과 벗하고 여전히 비추는 햇살을 어루만지는 한, 썩지 않고 은은히 향기를 풍기는 자연의 한 조각이다. 노래도 사진도 나의 글도 수많은 굴곡을 지나 만난 나의 길이고, 나의 영혼이고, 나의 삶이다. 귓가에 들리는 옛 노래가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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