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이틀을 꼬박 앓았다. 얼마 전 코로나 확진을 받아서 일주일 간 자가 격리를 했던 때보다 몸은 더 고달팠다. 온몸이 쑤시고 잔기침에 열도 38도 이상으로 올랐다. 자리에 누운 채 이틀을 잠만 잤다. 약을 먹어야 해서 밥은 매 끼니 챙겨 먹으니 힘들게 앓아누웠음에도 체중은 오히려 늘었다. 누가 보면 꾀병이라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감기는 잠시 쉬어가라는 몸의 신호다.’ 쉬는 것 외에 방법은 없었지만 그다지 고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왜 휴식이 필요했던 것일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와는 달리 기온의 변화나 주변의 상황에 적응하고 버티는 몸의 기능이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일 것이다. 아픔이 사라지고 나니까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입맛도 없고, 의욕도 없던 이틀이 순식간에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고통은 겪는 순간이 어려운 것이지 사라지면 아팠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년 전 요도결석으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여러 대의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람이 아주 짧은 순간에 그토록 달라질 수 있음을, 산다는 것이 고통 앞에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를.
나는 종종 몸이 아플 때면 나의 근거 없는 믿음을 발동시킨다. ‘고통이 시작되었을 때, 그 고통을 완화시키면 몸의 질병은 낫는 것이다‘라는 어찌 보면 위험한 상식을 말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자주는 아니지만 진통제를 삼킨다. 고통이 가라앉으면 내 몸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니까. 더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을 찾아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고통이 없으면 나는 병에서 회복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요즘 마취통증의학과가 인기가 있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러한 무지에 가까운 생각은 젊은 시절에 겪은 통풍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퉁퉁 붓고 땅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발이 아팠지만 한 약국에서 지어준 대 여섯 알의 약을 삼키고 나자 귀신 같이 통증이 사라진 것이었다. 희한한 것은 다른 약국의 약은 같은 통증을 호소해도 그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이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발의 통증이 그 약을 먹으면 그 즉시 고통이 멎을 뿐 아니라 일이 년은 다시 재발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출장 등의 이유로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사전에 이 약을 챙기기를 잊지 않았었다.
경험은 참 묘한 힘이 있다. 특히 통증에 대한 경험은 사람을 무한한 맹신에 빠뜨리기가 쉽다. 육체의 고통뿐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불안, 우울, 분노, 절망 등은 너무도 일상적인 마음이 병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진통제를 처방하던 그 약국에는 마음의 고통도 사라지게 할 마법의 약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고통이 사라지면 한동안은 아픔 없는 일상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에 먹는 약이 있다고는 하지만 통풍에 먹었던 그 약만큼의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의학이 좀 더 발전하면 마음의 고통쯤 진통제 하나로 가라앉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세상은 좀 더 편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 되지 않을까?
감기를 앓던 이틀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평소에 하던 일과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푸른 가을 하늘과의 조우도 내겐 없었다. 고통은 그렇게 모든 것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감기 정도로 무슨 그런 생각을? 감기에 걸리던 중병을 앓던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나를 변하게 만들고, 고통 이전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하지만 고통이 사라지면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그로써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픈 동안에만 유효한 것일지 모른다. 고통이 사라지면 그 기억을 잊게 되니까.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것처럼 잠시 전의 고통을 망각하게 되니까. 행복한 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행복이 가버리고 나면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니 말이다. 그래서 오래 전의 그 약국이 다시 떠오른다. 그곳에 가면 고통은 사라지게 하고 행복은 무한으로 늘리는 그런 약이 있지 않을까. 그런 알약 몇 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