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work-life balance) 새로 보기
못해도 3년은 훌쩍 넘었다. '워라밸'이란 말을 처음 들은지.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삶'의 일부라는 것. 따라서 일이 삶을 방해해서도, 방치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
그 취지에 깊이 공감했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지는지, 숱하게 봐왔으니까.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일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회사에서 며칠 밤을 새다, 사내 수면실에서 의식을 잃은 일. 7년 전 일이지만, 오늘처럼 선명하다. 한때 사람들 사이 '번아웃 증후군'이 독감처럼 퍼지기도 했다. '멍 때리기 대회'라는 골 때리는 이벤트도 번아웃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터.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재택근무가 확산되며 워라밸 논의가 잠잠해지는 요즘이다. 나는 바로 이 시점에, 워라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일'이 아닌 '삶'을, '업무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처음으로 짚어보려 한다.
만일 정시퇴근이 매일같이 보장된다면, 휴일근무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시간을 대하게 될까?
'나 자신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work'에 치여 남아나지 않던 과거의 'life'에 비해 특별히 더 값지고, 가치 있는 'life'를 보낼 자신이, 솔직히 없다.
업무가 적으면 적은대로, 시간이 많으면 많은대로, 그대로 안주한 채, 'life'를 방치하지는 않을까. 워라밸을 허울 삼아 '살지 않는 삶', '하지 않는 삶', 심지어 '죽어가는 삶'을 온전한 내 삶이라 착각하지는 않을까.
태풍에 흔들리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건, 흔들린다는 것이다. 죽어간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할 때든, 삶을 살 때든, 벌 때든, 쓸 때든, 놀 때든, 쉴 때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워라밸은 더 이상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갈 것인가', '죽어갈 것인가'. 그 절체절명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