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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빡빡이 Aug 15. 2023

이별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하나요?

나의 정신 개선 프로젝트-전남친 편

이 글은 나의 정신 개선을 위한 글이다.

이 글은 새로 시작한 연애를 건강히 오래 하기 위한 글이다.


나는 한 많은 유령처럼 내 머릿속을 맴도는 그를 떼어놓기 위한 이 시도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

연속될 글들이 모두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그토록 원하던 모습이 되어 있기를.





취업만 하면 모든 게 괜찮을 거야.

16년도에서 19년도까지 이어진 약 4년 간의 연애를 끝으로 나는 올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애를 하지 못했다.


연애를 하지 못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취준생, 작은 알바 월급. 취업을 위해 상경한 취준생이자 알바생에게 연애는 사치이자 방해물이었다. 가정폭력범 아버지와 전남친의 영향으로 나는 남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데 몰입하자! 하지만 계획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이 나약해질 때마다 그와 있던 나쁜 기억이 떠올라 송곳처럼 머리를 찔렀다. 기억이 떠오를 때면 당시에 느낀 굴욕, 슬픔, 수치심도 떠올랐다. 정신이 피폐하자 기력이 없었고,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알바와 하루 몇 시간 토익 공부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나쁜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연애를 하기 위해선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낫지 않는 이별의 상처와 불쑥 떠오르는 나쁜 기억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와의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을 지우려면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집 근처 문화센터의 요가 수업을 등록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땀을 줄줄 흘리고 나면 확실히 정신이 개운해졌고, 이별의 상처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운동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봇대 전등 아래에선 고작 그런 일로 힘들어하는 내가 우스울 정도였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코로나 때문에 요가 수업이 폐지되고 말았다. 요가를 대체하려 한강 달리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운동 효과는 순간일 뿐 일상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진상 손님과 나완 달리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sns 속 사람들과 만날 때면 내 정신을 지탱해 주던 방어막은 또다시 무너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쁜 기억이 떠올라 안 그래도 힘든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상황은 운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더욱 심각해졌다. 격한 달리기로 바퀴벌레를 잡다가 다친 발목에 통증이 심해지자, 달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옛날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정신과를 찾아갔다. 하지만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에 치료를 중단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다른 좋은 병원을 찾아가 제대로 된 치료와 상담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상처를 도려내려 글을 쓰고 있진 않았을 것 같은데...


운동도, 치료도 할 수 없던 내가 선택한 건 술이었다. 마침 집 바로 앞에 편의점이 생겼고 일주일에 3번, 많게는 5번까지 폭음을 했다. 피부가 뒤집어지고 살이 찌자 자존감이 쭉쭉 떨어졌다. 정신은 나아질 새 없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취업했는데 왜 안 괜찮아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은 성공했다. 2021년, 27살, 상경한 지 2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토록 원하던 취뽀를 이뤘으나 나는 이 회사를 잘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바닥을 치는 자존감에 의해 의사소통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말 끝을 흐리는 버릇이 생겨 상대에게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라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상대의 얼굴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기가 죽어 점점 더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한편으론, 그 상황이 수치스러웠고 엉망으로 변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런 감정을 가질수록 증상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감정을 억제하거나 해소하기 벅찼다.


취업하면 괜찮질 거란 내 막연한 믿음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마다 찾아오는 회의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상사는 내가 어떤 의견이라도 피력해 주길 바랐지만 나는 도통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내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업무, 야근, 인간관계 때문에 나는 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의 모습을 묘사하자면, '냉동된 죽은 동태'였다. 눈에는 생명력이 하나도 없었고 몸은 긴장으로 빳빳했다.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으면 식은땀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정치질이 심한 회사였고, 부서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의 감정에 잘 물들고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다니기에는 적합한 회사가 아니었다. 결국 한 달을 겨우 채우고 도망치듯이 퇴사했다. 앞날도 통장 잔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침 전세 계약이 끝나 이사를 할 시기였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회사 근처 구해 놓은 자취방 가계약을 해지했다. 가계약금 50만 원이 훅 날아가버렸다. 빨리 이사 갈 곳을 찾아야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까마득했다.


힘들수록 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상처를 줄 때마다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 내 슬픈 감정을 외면한 나 스스로가 미웠다. 그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나는 이 불덩이 같은 검은 응어리를 마음에 품고 살지 않게 되었을텐데...이와 동시에, 이별의 상처에 3년이 넘도록 힘들어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혹시 나는 미쳐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미쳐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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