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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12. 2023

두통

불편한 느낌에 눈이 떠졌다. 머리가 아파서 잠에서 깬 거다. 뭐지, 이 온도 이 습도 모두 다 적정한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혼자 살아서 아프면 역시나 서럽다느니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런 거 아무리 해봤자 아픈 시간만 길어지는 거다. 그럴 시간에 빠르게 이 불편함을 제거할 방도를 생각해 본다. 일단 씻는다. 일단 밥을 먹는다. 빨래를 해놓고 옷을 갈아입고 약을 사러 나가기 전에 베이스도 한번 잡아 본다. 그런데 다시 졸려온다. 졸림과 아픔 둘 중에 졸림이 더 끌리는 것 같아 일단 낮잠을 한 숨 자본다. 혹시 잠을 더 자면 아픈 머리가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눈을 뜨고 나도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다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가방엔 노트북과 충전잭과 지갑과 마우스, 휴대폰을 챙겨 넣는다. 이어폰이 안 보이니 헤드폰을 목에 두른다. 이 작은 동네엔 4개의 약국이 있다. 첫 번째 문을 닫음. 두 번째도 문을 닫음. 세 번째도 역시나. 마지막까지 안되면 일단 CU에 가서 비상약이 있나 물어보기로 한다. 열었나? 닫았나? 가까이 가보니 불이 켜져 있다. 열었다! 역시, 다 살 방도가 있다. 주말에도 아픈 환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훌륭하신 약사님이다.


두통약 주세요. 네 여기요, 3000원입니다. 두 알 잡수셔요. 두 알이요? 알이 커요? 안 커요, 작아요. 이게 효과가 제일 좋은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영수증 버려드릴까요? 영수증 주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두 번 하고 약국을 나온다. 근데 살짝 더운 거 보니 약간 열도 나는 것 같다. 동네사람들 아지트가 된 스벅에 들어간다. 한창 사람이 많을 때라 조금 서서 기다려 본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주세요. 아, 물도 주실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약을 열어본다. 뭐야. 알 작다고 했잖아요. 난 식도가 아주 얇은데. 이걸 어떻게 먹긴 그냥 먹어야지 별 수 없다. 두 알을 먹으라고 했지만 알의 크기를 보니 한 알만 먹어도 될 것 같다. 역시나 알이 커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무척 아프다는 생각을 한다. 10분. 20분. 30분. 열도 가라앉고 아픈 머리도 가라앉는다. 효과가 좋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나, 카페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혼란한 사람들 틈에서 어쩐지 내 외로움이 가려지는 것 같다.


진통제는 마음의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언젠가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아픈 마음도 달래주는  진작 알았으면 그날 밤에도, 그날  거리에서도  약을 먹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해본다. 고통  번에  . 남은 9알을  먹고나면 올해도 지나가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날들에 역시나 혼자라 해도 이제는 괜찮을  같다는 생각도. 이렇게  아픔을 함께해  네가 있으니.



202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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