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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화 Jul 27. 2023

용인 한택식물원

백화 만발한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

 중국 시인 도연명이 노래한 무릉도원이 현실에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복숭아꽃 대신 백화가 만발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별천지, 바로 ‘한택식물원’이다.

국내 최대 자연친화적 식물원으로 월별로 순차적으로 피는 꽃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곳이다.

잠시 세상의 시름을 잊고 싶거든 이곳에 가보시라.

속세를 발아래 두고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동화 속 ‘바오밥나무’를 보는 사이 어느덧 마음이 힐링될 것이다.  

   

한택식물원 입구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그곳

그곳을 향해 달리는 차창으로 4월의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내 마음엔 김춘수의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내려앉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살포시 내려앉은 꽃송이 덕분에 마음엔 이미 봄이 활짝 피었다.


드디어 입구가 아담한 한택식물원에 도착했다.

나무 대문 위에 하얀 글씨로 춤추듯 쓰인 간판이 양팔을 벌려 환영해준다.

들어가는 길목 하얀 꽃나무 가지가 고개 숙여 인사하니 봄 처녀처럼 설렌다.

산책길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심어진 꽃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본다.


 “안녕 분홍 앵초야.”

“ 바람에 흔들리니 더 예쁘다. 주황 튤립아”

“하얀 꽃의 네가 조팝나무로구나.”


라고 이름을 불러주니 그들은 어느새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곳은 사계정원, 어린이정원, 자연생태원 등 테마정원이 36개나 된다.

백송길, 배화길, 목련길, 산수유길 등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왜 이곳을 자연 친화적인 식물원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식물원하면 잘 다듬어진 커다란 화원을 떠올리게 된다. 당연히 인공미가 느껴지게 마련인데, 이곳은 비봉산 자락 지형을 있는 그대로 살려 조성된 까닭인지 자연미가 넘친다.

제주 비자림에서는 비자나무가 단독 주인공이라면 이곳엔 1만여 종의 식물들이 모두 다 주인공이다.

식물원 전체에 무지개처럼 알록달록 광채가 나는 것은 이 주인공들이 자기답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팝나무와 진달래


목련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무계단을 하나둘 밟아 올라가면 진달래가 군데군데 소박하게 피어 있다.

진달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추억이 소환된다.

어릴 적 마을 뒷동산을 온통 분홍으로 물들인 봄의 대명사 진달래를 예전만큼 쉬이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이곳에 와 진달래를 실컷 보며 향수에 젖어보라.

그러면 진달래 지는 모습이 벚꽃만큼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머물던 몇 뼘 대지마저 분홍빛으로 채색하며 지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우리네 삶도 원하는 대로 활짝 피었다 진달래처럼 아름답게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4월에 한택식물원을 방문하면 오랜 지기인 진달래의 진면목을 눈에 담아 갈 수 있다.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갈색 연꽃잎이 둥둥 떠 있고, 나목 두 그루가 장승처럼 서 있는 연못이 나온다.

<도화원기> 나오는 어부가 동동 떠내려오는 복숭아 꽃잎을 따라가다 동굴을 발견하곤 그 안으로 들어가 무릉도원에 당도했듯이, 왠지 이 연못을 통과하면 별천지 무릉도원에 이를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연못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전경이 파노라마같이 펼쳐진다.

저 멀리 굽이굽이 장엄하게 뻗은 능선과 인간 세상의 아련한 모습이 겹쳐서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다 어느 지점부터는 여기부터가 무릉도원이라는 듯 하양, 노랑, 분홍, 연록의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모습이다.

세상살이에 시달려 괴로운 이가 있다면 이곳에 올라보시라.

속세를 발아래 두고 내려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연못


한택수목원 전경




<어린왕자>와 바오밥나무

전망대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 바로 호주온실이다.

지구별에서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를 실제로 보다니! 횡재 맞은 느낌이다.

바오밥나무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처럼 나무 중간이 볼록하다.

가만히 올려다보면 뿌리가 땅속이 아닌 하늘을 향한 모습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제일 먼저 만든 것이 바오밥나무란다.

그런데 자기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에게 졸랐다.

“남들처럼 예쁘고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라고.

계속 조르자 화가 난 신이 바오밥나무를 땅에서 뽑아 거꾸로 처박아버렸다.

그래서 뿌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거라고.  

   

짠한 전설의 소유자 바오밥나무는 열대 아프리카 지역에 서식하고 높이가 최대 20m에 이른다.

전 세계에 8종이 있는데 마다가스카르에 6종, 아프리카에 1종, 호주에 1종이 분포되어 있다.

수명이 1000년에서 5000년에 이른다니 오랜 시간 그 땅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화석 같은 나무랄까.

쓰임새도 많다. 볼록한 몸통에 3톤이나 되는 물을 저장했다가 건조기에 식수가 부족하면 물을 공급해 준다. 그래서 물병나무(Bottle Tree)라 불리는가 보다.

나무에 수도꼭지를 달아 물을 받는 모습이나, 코끼리가 코를 빨대처럼 꽂아 물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무껍질은 섬유로, 잎과 가지는 사료로,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된다.

또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바오밥나무를 신성시 여겨, 이 나무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시신을 매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에게 유용함을 주는 바오밥나무가 <어린왕자>에서는 뿌리가 땅속 깊이 파고들어서 작은 별을 관통하여 산산조각을 낼 수도 있는 위험스러운 나무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매일 어린 바오밥나무를 찾아 뽑아낸다.


바오밥나무의 꽃말이 ‘경계하다’인 걸 보면 생텍쥐페리는 당시 사회나 인간 마음 속 악의 씨앗이 거대해지기 전 경계하고 뽑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닐까?

어쨌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죽음의 때마저 함께 하는 바오밥나무의 일생에 친근함과 경애심이 인다.     

 

식물원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무릉도원에서 꿈같은 날을 보낸 뒤 떠날 때의 어부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부는 다시 올 작정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표식을 해두었으나, 그 표식이 사라져 두 번 다시는 무릉도원에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무릉도원을 닮은 이곳 한택식물원은 언제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용인시에 자리 잡고 있다.

잠시 복잡한 현실을 떠나 쉼이 필요하거든, 어린왕자와 바오밥나무가 보고 싶거든, 떠나라! 한택식물원으로.

                

바오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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