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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화 Aug 22. 2023

응답하라, 1977

내 마음의 고향 쌍문동

‘응답하라 1988’로 유명해진 동네는 어디? 바로 쌍문동이다. 이곳은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 와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30대 중반까지 살았으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4남매 중 막내를 빼곤, 성남시에 있는 외가에서 살았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근무지인 동북운수가 있던 우이동 단칸방에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부모님은 쌍문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사를 하는 날에 비가 왔지만, 새집에 도착할 무렵 쌍무지개가 떠서 우리 가족을 반겼다. 아버지는 잠시 멈춰서더니 아래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우리 집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하셨다.

아버지의 손가락 방향을 보던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도 바라던 벨이 달린 철대문집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예쁜 하늘색. 대문을 연 순간 마당 한가운데 놓인 펌프를 보고는, 달려가서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해댔다. 지금까지 살았던 외할머니댁은 옆으로 여는 유리문에다 공동펌프장을 사용했으니 그럴 수밖에.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는 잔소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쁨으로 들떠있었다. 아버지 말대로 이 집, 이 동네는 나에겐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찼다.     


쌍문동은 행정구역상 서울이지만 워낙 변두리였다. 집에서 초등학교로 가는 길 왼쪽엔 논이, 오른쪽엔 야트막한 산이 펼쳐져 있었다. 집 뒤엔 공동 우물이 있고, 산으로 가는 초입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묘 2기가 있었다. 묘를 지나 산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약수터가 나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울 속 시골 같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다. 매년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한 산에 가서 아카시아와 진달래를 따 먹었다. 여름밤 들려오는 개구리 우는 소리는 자장가였고, 가을이면 잠자리 잡기에 몰두했다. 골목대장처럼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낮에는 산으로, 해 가지면 동네 공터에서 다방구, 망까기, 고무줄, 술래잡기하며 뛰어놀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에 정든 쌍문 2동을 떠나 쌍문1동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꽃동네’라는 별칭이 있었다. 고지대의 맨 끝 집인 우리 집 뒤로는 야산이 이어졌다. 내 방 창문을 열면 초록 세상이 펼쳐졌고, 북한산 봉우리들이 가까이 보였다. 나는 종종 방문 창가에 올라앉아 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때때로 낭만 소녀가 되어 시 낭송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빨강머리 앤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나의 감수성과 상상력은 이 자연 속에서 싹튼 것이리라.     

나이가 들면서 내 모습이 변해가듯, 내가 살던 동네도 차츰 변해갔다. 하늘색 대문 집이 있던 일대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꽃동네 단층 연립주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팔았는데, 그 자리에 5층 빌라가 신축되었다. 이젠 어디를 가도 어린 시절의 흔적을 볼 순 없다. 다만 몇 장의 사진 속에 남았을 뿐이다.      


송영우 작가는 ‘공간’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늘 그곳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렇게라도 붙잡아두려 합니다.

공간,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듯

마음이 아파옵니다.

이렇게 삶의 흔적들을 잃어버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라고.     

공감되는 말이다. 사람도 공간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람을, 그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어진다면, 영원성을 갖게 되는 거라고 위로해 본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 속 배경으로 언제나 함께 기억되는 쌍문동은 내 마음속 영원한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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