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No music, No life’
2년 전인가,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라는 책을 읽었다. 지천명이 지나고서도 불혹의 경계조차 넘지 못하던 나를 보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50부터라는 단어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대형 음반 판매장에 ‘No music, No life’라는 광고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한다. 이 말은 ‘음악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Music’에 해당하는 것을 다른 말로 대체해 보라고 숙제를 내면, ‘No soccer, No life', ‘No wine, No life’, ‘No tv, No life’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단다.
‘이것만 있으면 사는데 별문제 없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사는 보람이 생긴다면서, 인생 후반전에 이런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에게 있어 ‘No OO,~ ’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할까? 골몰히 생각하던 어느 날 “아, 바로 그거야! 글을 쓸 때잖아”라며 유레카를 외쳤다. 정말 그렇다. 글을 쓰고 있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즐거워 밤늦도록 지루할 틈이 없다. ‘몰입의 행복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쯤 되면 ‘No writing, No life’라고 정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함을 느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 굴에 빠져 땅속 나라를 여행하듯, 글의 세계로 훅 빠져들어 즐거운 여행을 한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이윽고 가고 싶은 길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 길을 걷는 도중 생각지도 못한 예쁜 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걸어온 길에 맘에 드는 글의 흔적을 남겼을 때의 충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나의 글쓰기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정여울 작가가 글쓰기 재능에 대해 얘기하다가, '무엇보다 글 쓰는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라고 한 말에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격이지만, 이때부터 글쓰기의 재능 중 적어도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기로 했다.
그럼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생각과 삶을 정리하고 남기고 싶어서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억의 편린들은 왜곡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체험, 기억, 생각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음식을 오래 씹었을 때, 식재료가 가진 고유한 풍미를 진하게 느끼는 것처럼, 생각도 자꾸 곱씹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샌가 수많은 생각이 객관화되고 정리가 된다. 그만큼 마음도 가벼워진다. 자기답게 꽃피우는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글이 민들레 홀씨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내려앉아, '희망의 꽃'을 피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 못난 모습조차 글로 써 내려가는 용기는 스스로를 고무시킨다. 그 힘이 한 명의 독자에게 가닿아 따뜻한 격려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의 세계는 그 한 사람 몫만큼 넓어질 테지. 이렇게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면서 좋은 영향력을 넓혀가고 싶다.
문득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그들의 영혼이 쫓아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영혼이 쫓아올 시간을 주기 위해 글쓰기를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