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 로망 중 하나 현지인처럼 생활하기
: 현지인 모드 연출가능
최근 슬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집 앞에 랜드마크적인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들어선 근처의 도보이용 가능한 아파트/주택단지를 일컫는 말로 슬리퍼를 신고 백화점을 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부동산용어 중 하나이다. 가령 스타필드 근처 아파트에 있는 사람들이나 한강시민공원 앞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들 대개 이런 단지들은 부러움의 대상으로 가격도 근처 비슷한 조건의 유사단지보다 프리미엄을 더 쳐서 비싼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러움의 표시 혹은 특별함의 표시로 아마 이런 용어까지 생겨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게 단지 백화점이나 한강이 아닌 TV에서 연말연시 때 되면 나오는 뉴욕의 42번가 브로드웨이 거리를 . ‘나는 가수다’ 해외공연을 했던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앞을, 세계정치의 중심 워싱턴DC 지금도 그의 말에 따라 세계를 좌우하는 트럼프의 업무공간 백악관에서 아니면 현대건축의 거장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해서 착공하고 현재도 계속 건축중인 건축기간만 200년이라는 성파밀리아 성당 앞을 슬리퍼 하나 찍찍 끌고 동네마실 나간다면 어떤 느낌일까?(“찍찍 끌고”라는 표현이 경망스러워 죄송하긴 하나 슬리퍼와 이렇게 궁합이 맞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편한 복장에 슬리퍼 찍찍 끌고 뉴욕42번가 브로드웨이를 어슬렁어슬렁 마실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보케리아 시장과 마트를 거닐고 있는 것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고 한달살기를 하는 우리 가족에게 거의 매일 벌어지는 실제상황이다.
유난히 걷기를 좋아하는지라 도시에 처음 도착해서 하는 미션이 숙소 근처 동네 혹은 중심가 중심으로 여기저기 무작정 한 두 시간 걸어서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곤 했다.
걸어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Bar나 식당도 보이고 특이해 보이는 이런저런 샵에 들어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보이는 마트마다 들어가서 현지분위기를 체크하곤 했다.
현지 분위기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을 체크하는 것은 아니고 마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가 여기서 주로 뭘 먹고 살지 대략의 것들이 보이는 생존차원의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여러 곳의 마트를 통해 적정 물가도 대충 봐두는 것도 뺄 수 없는 미션이었다.
실제로 2019 바르셀로나 한달살기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아들 1호와 몬주익 언덕을 틈틈이 아침, 저녁으로 조깅을 한 일이다.
맞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일본선수 모리시타를 물리치고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그 코스.
특히 몬주익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마라톤 40km 정도지점이었는데 한여름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그런 경사를 이를 악물고 뛰어가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은 한달살기 기간 중 아들 1호에게 설명하면서 유튜브로 그 때 그 영상을 찾아봤다^^ 다시 보니 그 때 그 감동이 다시 물밀 듯이, 심지어 아들1호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영상을 보면서도 꽤나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아마 2위가 일본선수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1호와 뛰면서 황영조 마라톤 코스프레를 하면서 계속 뛰었던 것도 한달살기 best of best 중의 한 장면이다.
집에서 저녁 차려 먹고 가족들과 마실 나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워싱턴DC에서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배경이 된 링컨기념관 앞 워싱턴 기념탑 몰을 거닐고 시드니에서는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에도 자주 나갔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 보단 말 그대로 그냥 마실이었다.
바르셀로나는 그런 의미에서 완전 천국이었다. 숙소 운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잡은 숙소가 바르셀로나 여행자의 중심인 카탈루냐 광장과 에스파냐 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어 도보로 산책 나가기에 이만한 환경이 없었다. 고딕광장이나 람블라스 여행자 거리 특히 가우디 유명 유적지 중 하나인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 근처인지라 어딜 가다 지나가며 거치게 되는 곳이었다.
남들은 이거 하나 보러 비싼 비행기 표 끊고 와서 딱 2시간 보고 가는 곳들을 우리는 날마다 출근길 지나치듯이 지나쳤다. 오늘은 사람이 많네 적네 구경하면서 ~
바르셀로나 사람들 여름철 휴식처 바르셀로네타 해안은 틈나면 아이들과 같이 가서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매번 물놀이 하는 이 바다가 세계사 책이나 로마인이야기(*바르셀로나 가기 전에 혹시나 관련 있을까 싶어 15권 완독하고 갔다,)에 밥 먹듯이 등장하는 서구문명 탄생과 뿌리인 로마인의 바다 바로 그 지중해이다.
어찌하다 보니 해외한달살기만 계속 얘기하게 되었는데 사실 우리나라 한달살기에서 이런 로망을 즐기는 것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아직도 제주바다는 내 가슴 속의 최고로망이다.
소시적부터 여행을 좋아했던지라 세계 내로라하는 곳들 많이 돌아다녀보았지만 아직도 제주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항상 하는 얘기 중 하나가 “돌고돌아보니 전 제주가 가장 좋더라” 라는 표현을 망설이지 않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바다를 자주 갔지만 제주에서는 거의 매일 바다를 끼고 살았던 것 같다.
오늘은 함덕해수욕장, 내일은 세화, 다음은 김녕 그리고 월정리, 하도리 다음주는 중문해수욕장도 가고 가는 바다마다 하나 빠짐없이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 아무리 극성수기여도 해운대처럼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목욕탕 바다가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 아무래도 제주는 비행기 아니면 배라서 들어오는 사람이 한계가 있다보니 ~
첫 번째 제주한달살기 숙소는 중문근처 빌라였는데 거기 위치가 또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나중에 숙소얘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숙소 운은 거의 퍼펙트했다. 우리에겐 적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중문관광단지가 차로 5분 거리인지라 심심하면 중문관광단지 내 고급특급호텔 마실을 가곤 했다.
특히 비오는 날은 마실 갈 곳으로는 딱이었다.
제주신라호텔 로비 그리고 지하에 휴식공간은 널찍하기도 하고 사람도 드문드문 다녀서 눈치 안보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경험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신라호텔 뒤쪽 정원은 그 유명한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쉬리가 얼마나 유명한 영화인지 요즘 세대는 모를 것이다. 그 당시 관객 600만명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탑클래스급 배우인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역대급 캐스팅 그리고 그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연출하기 힘든 엑션 스릴러 블록버스터영화였다.)
중문 쪽빛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제주특급호텔 널다란 정원을 집 뒷마당 마실하듯 산책하며 누리는 이런 호사를 하는 순간은 세계 누구 하나 남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여행자들이 제주 3박 4일 여행 기간 제주 한바퀴를 다 도는 동안 우리는 한달동안 숙소 반경 10km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 속초에서 누린 호사도 이에 못지않다. 해마다 매년 말일 12월 31일이 되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밤을 세워 10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오는 해돋이 명소가 바로 내가 묵은 숙소 앞 도보 10분거리이다.
물론 숙소 바로 앞 바다에서도 해돋이가 보인다.
제주바다 좋은 지만 알았지 동해바다 또한 색깔이 아름답기는 못지 않다. 동해바다만의 이런 색깔과 제주와는 또 다른 바다 파도가 가지는 역동성을 예전에는 왜 미쳐 몰랐을까? 한달살기여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들을 현지인 모드로 그저 동네마실 다니듯이 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는 것은 일상 중에 한달살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