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잡아먹히는 먹이사슬
어느날, 아빠가 차를 태우고 본가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경찰과 119 구급대원이 영화에서 볼 법한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장면이 눈에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차를 정차하고 경찰에게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야생 멧돼지에게 습격당해 사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논밭에서 야생 멧돼지에게 작물 피해를 입어본 농민이라면 알 것이다.
맷돼지도 돼지인만큼, 식욕이 왕성하거니와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먹는다는 것을!
할머니가 근처 CCTV를 보니 나물을 산등성이에서 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뜸 굶주린 멧돼지가 할머니를 들이받았다고.
근처에서 같이 풀을 캐던 할아버지는 놀라서 있는 힘껏 멧돼지를 후려치고 다투었댄다.
하지만 남은 것은 두분의 발목 밖에 없단다.
신발이 신겨져 있어서 발은 못먹고 나머지는 우적우적 재주껏 씹어먹었나보다.
말만 들어도 참 괴이한 일이다.
배고픔.
인간이 가지고 살아가는 힘.
사람을 이끌어가는 버팀목이자 강한 에너지.
욕망.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자 바램.
타인에게서 비롯되어 행복을 향한 뜨거운 열망.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반대로, 밥을 먹지 않으면 밥을 먹고 싶어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이 너무 쪘다고, 그 욕망을 억제하려고 한다.
그것은 배에서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배고픔을 머리로 짓누르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허기짐과 아름다움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달콤쌉싸름한 카페모카처럼, 인생은 한 가지 맛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잘못을 했지만 미안한 감정이 없어서 인간적으로 미안하기도 한다.
이런 다채로운 맛과 같은 감정을 어린 아이들은 잘 감당하기 어렵다.
솔직히, 어른이 되서도 양가감정을 정확히 분리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짬뽕처럼 섞인 오만가지 감정들에 각각 분리해서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그래도 가끔은 마음의 짐더미에 치여서 머리아프고 지칠때가 있다.
그럴때면 그냥 단순해지자.
우리 인간이란 족속은 지능이 높은 언어를 활용할 수 있어도, 결국 짐승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고결하고 깔끔하고 멋지게 행동하되, 가끔은 본능적인 우리 모습을 드러내도 좋지 않을까?
마치 한마리의 들짐승이 되어서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그런 동물 말이다.
모두가 말하진 않지만 각자 마음속에 담아두는, 타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속내가 있다.
아무리 깔끔한 사람이더라도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그래도, 사회적 규칙과 도덕적 법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행동해보도록 하자.
모든 행동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