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우리를 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뒷담화는 우리 생활에 만연합니다.
우리는 왜 타인의 잘못을 따지고 흉을 보게 되었을까요? 심지어 대부분 그가 없는 자리에서 말이죠.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끊을 수 없죠.
왜 그렇게 되었는 지를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찾아보고
우리 모두가 뒷담화를 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내용을 공유해봅니다.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언어를 통해 복잡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 언어 진화의 이론으로 유발 하라리는 ‘뒷담화 이론’을 제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로, 맹수와 맛있는 열매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대화만으로는 생존과 번식에 충분치 않다.
무리 안에서 누가 믿음직 한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뒷담화이론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무수히 많다. 게다가 우리의 대화 중에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이 이론의 신빙성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역사학 교수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대화할 것 같은가? 핵물리학자들이 휴식시간에 쿼크에 대한 과학적 대화를 나눌 것 같은가?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적발한 교수, 학과장과 학장 사이의 불화, 동료 중 하나가 연구기금으로 렉서스 자동차를 샀다는 루머 등을 소재로 한 뒷담화를 떠든다.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이 이론의 진실 여부는 뒤로 하고,
비록 생존과 번식이라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를 위해 발달한 능력이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뒷담화와 그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을 때때로 느끼게 된다.
한번쯤 돌아볼 때가 되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만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성경의 말씀이다.
타인을 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욕을 하고 싶은 해당 행동이나 모습이 자신에게 없어야한다.
예를 들어, 지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쟤는 개념이 없나. 가장 기본적인 시간 약속도 못 지키는구나.’ 라고 욕하려면
적어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실 그대로를 지적하는 활동까진 가능해보이며 필요하기도 하다.
당사자에게 직접, 둘만 있을 때 ‘지각은 하면 안된다’ 라고 전하는 건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을 구태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십거리로 삼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적용한다면 놀랍게도 내가 뒷담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지각하고, 예의없고, 오만하고, 멍청하고, 융통성없고, 사려깊지 못하며, 이기적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뒷담화를 하고싶은 순간에 자신을 돌아봐야하는 이유다.
분명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남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전하고 싶었던 여러 메시지 중에 하나가 이것 아닐까?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
최근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 주호민, 김보름, 유희열, 강백호
사실 여부(그 사람이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는지)와 별개로 일종의 집단적 공개 처형이 나타난다.
대중은 같은 대상을 비판하며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받는다.
또 이는 대중들에게 잘 팔리는 주제(선악 구분이 명확)이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진실은 신념을 이기기 힘들다.
만약 논란이 오해로 밝혀질 경우에도 다시 여론이 회복되기까지,
확증편향이 해소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당사자에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끼친다.
언론, 대중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뒷담화에도 윤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