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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Dec 06. 2023

너의 다윗이 되어 줄게

십수 년 전, 출사표를 던지 듯 사표를 내고 향한 영국이었다. 옥스퍼드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여러 시대가 한데 뭉그러뜨려 공존하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서든 해리 포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뛰쳐나올 듯해 저절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머물던 기숙사는 옥스퍼드 시내와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소풍을 오가듯 흥얼거리며 걷다 보면 곧 옥스퍼드의 랜드마크인 카펙스 광장에 다다른다.
때로는 고즈넉하고 때로는 분주한 거리를 걷는 게 좋았다. 하루에 두 번, 기분 내키는 날엔 네 번도 오고 갔다. 얼마나 쏘다녔던지 옥스퍼드에 도착하고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곧 두 배 이상 쪄버렸지만..).
그렇잖아도 사색하길 좋아하는 내게 영국은 맞춤한 나라였다. 하루 열두 번도 더 변하는 날씨가 지랄 맞았지만 그 조차도 철학적이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을 날씨에 덧입혀 큰 깨달음을 얻는 양 기뻐했던 치기 어린 내가 거기 있었다.

스물아홉, 차별과 부당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던 내게 영국도 그저 사람 사는 곳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는 개뿔! 싶은 순간도 수없이 많았고, 만나길 갈망한  영국 신사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 단정 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Bloody와 fu*k이 없인 언어 구사가 어려워 보이는 그들에게 익숙해지는 길만이 살 길이었다.
다년간의 사회생활 경험은 내 영국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정의로운 척했을 뿐 차별과 부당함에 굴복했던 삶의 태도는 낯선 나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앞에선 친절해 보여도 뒤에선 입에 담지 못할 말도 서슴없이 해대는 영국 사람들의 속내를 알게 된 후 더욱 굴종적 태도를 취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꺼져버려는 게 목표가 되기까지 석 달이면 충분했다.

어디 가든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다. 만일 미친놈이 없다면 그게 바로 본인이라지 않는가. 대부분의 옥스퍼드 주민들은 동양인 유학생들에게 무관심했다. 진열된 상품도 그보단 다정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싶을 만큼, 한 톨의 관심조차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주 노동자들을 향한 우리 시선과 비슷해 뵌다.
대다수 무관심한 영국인들 사이에 유독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중년 아주머니가 있었다. 카펙스 광장을 지날 때, 특히 사람들이 드물게 다니는 시간에 출몰하는 그녀는 우리 사이에 '이 구역의 미친년'으로 통했다. 동양인 여성이 광장에 발을 들이면 어디 숨었다 나타났는지 들소 같은 몸을 들이밀었다. 거대한 몸집이 그렇게 재바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속도를 붙여서 말이다.
영국인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나도 그 아주머니의 돌격에 속수무책으로 여러 번 당했다. 원색적이고 차별적 언어를, 그 구역의 미친년답게 뱉어내는 여자를 만난 날엔 하루 종일 언짢았다. 그런 고로 나는 온 힘을 다해 여자를 피해 다녔다.

어느 볕 좋은 날, 옥스퍼드에서 사귀게 된 한 무리의 친구들과 크라이스트처치 잔디밭 위에서 점심을 먹자 하고 길을 나섰다. 빨리 가지 않으면 구경하기도 힘든 고기 파이를 사가기로 했다.
음식이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이어도 옥스퍼드는 좀 달랐다.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사는 곳답게 제법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대부분의 맛집이 카펙스 광장 주변에 있는 건 우리에겐 좀 불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광년이 아줌마를 만나는 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이 얼어 죽을 노란 원숭이들!!"로 시작하는 욕지기와 함께 저돌적으로 나타난 그녀는 딱 봐도 동양인 여자인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한대 팰 듯해도 절대 때리지 않는 고오급 스킬을 시전 하며 오로지 세치 혀로 칼부림하는 그녀 앞에 서니 머리가 하얘졌다. 뭐라 한 마디 해주려 입술을 달싹여봐도 제대로 된 단어 하나 구사되지 않는 자신이 죽도록 싫어지려는 순간!!!
"야!!! 뭐랬어?!!!!!!!" 광년이 아줌마를 이겨먹는 목소리 하나가 우리 무리 사이에서 발사됐다. 카랑카랑,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고막에 한 땀 한 땀 수놓듯 박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는 잠시 눈알을 굴렸다.
우리 무리 중 가장 작고 연약한, 나긋하고 여성스러운 데다 인형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친구가 여린 팔을 들어 광년이 아줌마에게 삿대질로 맞서고 있었다.

"미친년한텐 미친년이 약이에요." 사태를 무마시킨 후 우리가 알던 곱고 얌전한 모습으로 돌아온 친구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웃었다.
세 문장을 완성할 겨를도 없이 단발 마를 지르며 꽁무니를 빼던 광년이 아줌마의 뒷모습은 내가 본 중 가장 졸렬한 꼬락서니였다. 제 몸집의 4분의 1은 될까 한 자그마한 동양 여자에게 무참히 당하고 돌아선 그녀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냐 물었다.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
"내 뒤에 세 사람이나 있는 데 뭐가 무서워요. 내가 한 대 맞으면 다들 가만있지 않을 거였잖아요."


친구의 당당한 모습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낯선 나라에서 주눅 들어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나를 일으켜 세운 순간이기도 했다.

비겁한 겁쟁이에 불과한 광년이 아줌마는 내 안의 실체 없는 두려움과 닮아 있었다. 커다래 보이는 몸피는 거품에 불과했고 쏟아내는 폭언은 나약함을 숨기려는 포장지였다. 직면하지 않고 옆 눈으로만 본 탓에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큰돈 들여 어렵게 발 들인 영국에서 사소한 문제 때문에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내 안의 두려움은 실체가 없었다. 부당한 대우에 목소리를 낸다고 신고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날 너한테 한 번 더 반하고 말았잖아! 코끼리만 한 광년이 아줌마를 몇 마디로 겁먹게 하는데 어떻게 안 반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가까웠던 우리는 골리앗 앞에 선 다윗 같던 친구를 추억했다.

"그날 이후 내 영국 생활도 많이 바뀌었지. 더 이상 쫄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으니까. 그러고 나니 영국이 꽤 괜찮은 나라더라고. 내 안에 쫄보가 근시안적 사고를 하게 한 줄 모르고 지랄 맞은 영국이라며 한탄만 했는데... 내 목소리를 내는 게 가능해진 다음엔 어딜 가도 즐겁더라."

친구가 내려준 짙은 커피를 홀짝이며 나는 고백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너 같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용기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어. 그날의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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