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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Dec 22. 2023

남겨진 사람을 위한 노래

그 또한 삶인데

JTBC에서 방영하는 <싱어게인 3> 25호 가수는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냈다고 한다. 그간 불렀던 노래가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사모곡이었다며 눈물 글썽였다. 김추자 선생의 '님은 먼 곳에'를 좋아했던 어머니를 보내고 나니 모든 사랑노래가 어머니와 겪은 이별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어머니. 그 어머니를 보낸 건 비단 25호님만은 아니었다. 평생의 반려, 아내를 떠나보내고 두문출하는 아버지 슬픔이 크고 무거웠다. 그 아버지가 자신의 노래를 듣고 힘 나길 바란다며 가왕 조용필의 '그 또한 삶인데'를 그는 열창했다.

심사위원 백지영 가수의 말처럼, 중년의 나이를 사는 우리는 '엄마이면서 엄마가 아직은 필요한 나이'이다. 크는 자식에게 가진 걸 내어주느라 늙어가는 부모를 미뤄두게 되는 나이이다.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헛된 믿음 하나에 많은 걸 담보 잡고 미룬다.



어제 오후 에일 듯 추운 날씨에도 딸과 외출을 감행했다. 어딜 돌아봐도 할 일 투성이인 집안에서 글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카페로 가자하고 나선 걸음이었다. 10분 남짓 걸어가면 있는 카페로 가는 길목에서 엄마를 만났다. 멀리서도 우리를 알아본 엄마는 한 집에 사는 우리가 뭐에 그리고 반가운지 한참을 붙들었다. 꼭꼭 동여맨 옷깃도 뚫고 들어오는 찬 바람에 온몸이 부르르 떨려 빨리 카페로 들어가고픈 마음에 "집에서 이야기해요, 엄마", 따뜻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말로 엄마 등을 밀었다. 조그마한 몸피의 엄마가 돌아서자 딸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할머니 혼자 추울 것 같아." 건넨 한 마디에 심장이 욱신했다.


매 순간, 엄마가 돌아설 때마다 후회한다. 좀 더 다정할걸, 좀 더 살갑게 대할걸. 세상모든 '할걸'을 그러모아 나열한다. 오늘 낮에도 그랬다. 한 지붕아래 두 집 살림 중이라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마주할 일이 없을 때도 있는 우리를 엄마는 부지런히 찾아오신다. 택배 가져다주느라, 맛있게 무친 나물을 먹이고 싶어서, 조용한 우리가 뭐 하나 궁금해서, 새로 산 옷이 어울리나 물어보려고, 한 걸음에 우릴 찾으신다. 오늘도 내려와서 가져가라 하면 될 일을 양손 가득 채소를 들고 이층으로 오셨다. 우린 밥 먹는 중이었다. 엄마 보시기에 부실한 밥상이지 않을까 얼른 훑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게 초라하면 불편한 게 부모 마음인 걸 아니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어제 낮에 길에 서서 "엄마가 배추도 파도 뽑아 뒀고, 그 뭐냐..." 하시던 걸 집에서 이야기하자 한 게 퍼뜩 떠올랐다. 결국 내가 챙겨가지 않으니 손수 들고 오신 게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는 '엄마가 되어봐도 엄마를 못 따라간다'라며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모성을 이야기했다.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를 못 따라가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 가서 이야기하 자고 선 잊어버린 나와 달리 엄마는 가장 예쁘고 싱싱한 걸로 깨끗이 씻은 채소를 건네셨다.




나는 훗날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고향을 떠날 결심이다. 나고 자란 이곳의 사소한 무엇에도 스며있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상쇄될 때까지라도 떠나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침 거울에서 아버지를 만날 테고, 작은 습관 하나에서도 엄마를 만날게 뻔하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후회를 나열하지 말고 오늘, 바로 지금 사랑한다 전해야겠다. 백번 만 번 해도 결국 후회할 테지만, 아쉬움은 남기지 말아야지.... 망설이다 가버린 사랑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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