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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Jan 30. 2024

남편관계론

"어우, 세상천지 제일 어려운 게 남편이야. 내 자식이면 때려서라도 가르치지... 남의 아들 데려와서 뭔 고생인지 몰라." 친구가 넋두리를 했다.

"네 남편은 어때? 말은 통하니? 우리 집 남자는 열을 알려주면 열한 개를 잘못하는 용빼는 재주를 가졌잖니?" 마주 앉은 나를 향해 질문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친구 얼굴에 그간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리쌍의 노래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친구에게 차마 말 못 했지만 내 남편은 대한민국 상위 1% 속하는, 이상적인 남편이다. 성실함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내가 육아로 퇴사한 후 가장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면서도 더 많은 걸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집안일부터 시가와의 관계까지 말끔하게 알아서 해결한다. 딸과 나를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게 할지 연구하는 사람처럼 모자람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렇다.


딱 10년 전 나는 곧 죽어도 이혼을 해야겠노라 남편에게 선언했다. 당신만 아니면 복잡할 것도 힘들 것도 없는 내 삶에서 빠져달라 요청했다.


결혼과 동시에 중증 효자 병에 걸린 남자와 아들 가진 온갖 유세를 부린 시가 어른들을 참아내느라 우울증에 화병을 앓던 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걸까? 나와 달리 남편은 자기 생에 이혼은 없다며 나를 잡았다. 자신이 변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11년 연애, 5년의 결혼 생활, 속는 김에 한 번 더 속아보자 하고 이혼을 반려했다. 아니, 미루었다.


개과천선은 사자성어로나 존재하는 말이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이혼을 미뤘더니 변화는커녕,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을 실현했다. 효자 병도 여전했고 시가와 내 사이 우왕좌왕하는 모양도 변함없었다. 울화통이 터지려 했다.


항상 상대방이 자신을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라.​

"진심으로 인정하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 이것을 원한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184,185


당시 나는 우리 가족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강의를 듣고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어린 딸을 잘 키울지 고민하며 열심이었다. 딸을 대하듯 남편을 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곧장 실천에 옮겼다.

남편의 위치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시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나와 딸이 함께 하는 집안의 가장이란 위치 말이다. 일명 탯줄 끊기 작전이 시작됐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도 척척해오던 일을 중단했다. 집안 이곳저곳 소소한 보수를 남편에게 일임했다. 일례로 주방 수도꼭지에 온수 밸브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내가 고칠 수 있었지만 남편에게 맡겼다. 무려 1년 동안 고쳐주지 않는 걸 내버려 두고 찜통에 물을 끓여 설거지를 했더니 1년 만에 남편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해결했다. 콸콸 쏟아지는 온수에 그릇을 씻으며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엄마 껌딱지였던 딸을 처음으로 남편과 단둘이 외출하게 했다. 집 가까운 놀이터를 시작으로 주말마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네 시간, 온전히 아빠로 살도록 했다. 유기농 식재료만 먹여 키운 딸에게 라면을 먹인 것도, 치토스를 먹인 것도 그 시절 남편이었다. 두 부녀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잔소리를 꾹 참았다.


월급이 통장으로 자동이체되면서 가장의 위신이랄까? 이런 게 떨어진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을 떠올렸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엔 남편에게 잊지 않고 감사를 전했다. "당신이 애쓴 덕에 내가 아이 키우면서 편안하게 사는 거 알아. 당신 아니면 누가 우릴 이렇게 살펴주겠어. 당신 피땀을 맞바꾼 돈이니 아껴 쓸게. 한 달 동안 정말 애썼어, 고마워~"


우리가 옳을 때는 부드럽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끌어들이고, 우리가 틀렸을 때는 재빨리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자.​ 잘못이 있다면, 빠르게 그리고 단호하게 인정하라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240, 241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나는 어지간해서 남편에게 책잡힐 짓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정의 불화의 99%는 시가 어른들로 인한 것이었으니 내가 그에게 사과할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남편이 나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일 투성이었다. 하지만 찐 경상도, 그것도 보수의 끝판왕 대구 남자인 그에게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마치 사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러니 나도 남편에게 절대 사과하는 법이 없었다. 부부 싸움 중에 격한 발언을 하고서도 나를 합리화시키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딸에겐 너무 쉽게 사과하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가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남편에겐 자존심을 내세웠다.


어느 날, 우린 또 투닥거렸다. 내가 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남편의 역린을 건드린 게다. 평소 같았으면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렸을 내가 재빨리, 단호하게, 진심을 담아 남편에게 사과했다.


"아까 그 말은 내가 잘못했어. 변명할 것 없이 내 잘못이야. 미안해. 어떻게 하면 당신 화가 풀릴까?"


이 짧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 얼굴이 편안해졌다. 나를 빤히 보던 남편이 피식 웃으며 "뭘 풀어. 사과했으니 됐어"했다. 벼린 칼날 같던 공기가 순식간에 녹진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 대한 불만과 악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논리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다. 야단치는 부모, 고압적인 상사, 권위적인 남편, 잔소리하는 아내들은 깨달아야 한다. 원래 사람이란 자기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법이다. 강요나 압박으로는 우리 의견에 동의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상냥하고 다정하게 다가간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245


남편과 내 사이를 가로막는 절대적 존재는 시가였다. 우리 위에 군림하길 원하는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불가항력의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시어머니 말 한마디면 우리 집엔 핵폭탄이 투하된 꼴이 났다.


나의 분노는 남편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했다. 반려한 이혼서류가 눈에 아른거리던 어느 날, 어린 딸이 제 아빠를 찾았다. 그때 딸은 만 5세 언저리였다.


"아빠, 아빠는 우리 할머니 집(외가를 딸은 그리 불렀다)에 가면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소파에 앉아 쉬잖아. 그런데 엄마는 왜 대구 할머니 집에 가면 계속 일만 해? 대구 가면 엄마는 부엌에서 일만 하고 아빠는 거실에서 대구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고.. 나는 엄마가 일만 하니까 심심하고 슬퍼. 대구는 아빠 집이니까 아빠가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엄마만 일 시켜?"


꿀보다 더 달콤한 어린 딸의 곤란한 질문은 남편 가슴에 먹물처럼 번졌다. 그 후, 남편의 변화는 몹시 명확하고 빨랐다. 어머니와 내 사이에 어중간하게 서 있던 모습을 철회하고 완전히 내 편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억지스러운 요구가 있을라치면


"엄마, 그런 건 이 사람이 아니고 엄마 자식들한테 말씀하셔야죠. 자식한테 요구할 걸 왜 애 엄마한테 이야기하셔서 곤란하게 하세요." 단호히 막아섰다.


상대방이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 현명한 사람은 사람들 위에 있고자 한다면 사람들 아래에 서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자 한다면 사람들 뒤에 선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위에 있어도 무겁게 여기지 않고, 그가 앞에 있어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283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명절 당일 아침에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것이었다. 기름 쩐내 나는 전을 뒤적이는 아침이 싫었다. 그런 내 바람을 남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꼭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주려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고 몇 년간 명절이라 모이는 것도 중단됐다. 그렇다고 카페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기회는 생겼지만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난 추석이었다. 코로나 종식 선언도 되었으니 그전처럼 시가에 가겠거니 했던 내게 남편은 "이번 명절엔 대구 안 가기로 했어. 그러니 우리끼리 편히 쉬자." 하는 게 아닌가!!! 모자간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몰랐지만 어머님도 흔쾌히 그러자 셨다니 쾌재를 불렀다. 더불어 남편은


"명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카페 갈까? 거기서 브런치 먹고 책 읽는 게 당신 버킷 리스트라면서? 이번 추석에 해보자." 했다. 진심 눈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딸이 있는 자리에서 남편의 공로를 치하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절대 잊지 않았다) 있었는데 당신은 기억하고 있었네? 정말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내가 명절 아침에 호사를 누리게 생겼어. 안 그러니, 딸? 네 아빠 정말 괜찮은 남자지 않아? 너도 나중에 아빠 같은 사람 만나야 엄마처럼 호강하고 사는 거야~." 입에 침 좀 많이 바르고 온 마음을 다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 이번 설에도 어머니와 설 명절 정리를 해놓았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는 설 아침에도 우리 가족은 스타벅스의 쓴 커피로 떡국을 대신할 예정이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그간 남편과 내가 보낸 시간이 절로 떠올랐다. 다양한 강의와 책에 녹아난 인간관계론적 사고가 나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쳤고 위태했던 우리 가정을 지켜냈다는 생각에 감동스러웠다.


이 글에 쓴 내용보다 몇 백배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얽힌 갖은 방법과 이론들이 또 얼마나 많을지, 속된 말로 대하소설이 몇 편이다.


나는 조만간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에도 이 책을 투하할 예정이다. 단순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데일 카네기의 지혜는 우리가 반드시 숙지하고 실행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읽고 토론으로 서로의 관점과 경험을 나누는데 내 열정을 보태야겠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린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니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내 남편과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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