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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Feb 22. 2024

안녕, 까망? 안녕, 까망.

이제야 꺼내보는 이야기

지난 1월 3일 새벽 4시 55분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아래층 사시는 엄마였다. 새벽 시간, 그것도 엄마의 전화.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혹시 아버지가 편찮으신 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왜요, 엄마! 아버지 편찮으세요?!

"정아.... 까망이, 까망이가 죽었다..."


지난 2월 19일, 까망이가 살았더라면 아홉 번째 되는 생일이었다.

새벽녘, 현관에 앉아 내보내 달라 조르는 까망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가 운동가시는 시간이었다. 꿈결에 "이 놈 자슥, 그냥 좀 자라." 눈을 비비며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은 텅텅 비어있었다. 텅 빈 현관 앞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까망이가 떠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녀석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경주 사는 우리가 경남 합천까지 가게 된 건 순전히 아기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고양이 타령을 하던 남편과 딸을 위해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어느 가정에서 올라온 입양 공고문을 보았다. 그레이 털 빛이 멋진 러시안 블루 부부 고양이 사이에 태어난 고양이 사 남매, 한눈에 반해 남편을 졸랐다.


2시간 30분을 달려간 곳에서 만난 아기 고양이 사 남매를 고양이 아빠가 돌보고 있었다. 태어난 후로 내내 그랬다고 했다. 엄마 고양이는 젖만 겨우 물릴 뿐 제 새끼가 곁에 오면 성질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빠 고양이가 사 남매를 데리고 화장실도 가고 캣 타워에서 신나게 놀아주는 게 아닌가. 놀라웠다.


그 집주인은 우리 부부에게 암컷 새끼 고양이를 빼고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데려가라며 수컷 고양이  세 마리를 우리 앞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한 녀석이 내 품에 풀쩍 뛰어들었다. 까망이가 나를 간택한 순간이었다.



아빠가 키운 까망이는 남달리 튼실했다. 뼈대가 굵고 키가 큰 데다 생긴 것도 어찌나 잘 생겼던지 검진을 위해 데려간 병원에서 상위 1% 고양이라 했다. 그런데도 난 녀석이 짠했다. 젖도 뗀 녀석에게 펫 전용 우유를 사 먹여 덩치를 더 키웠다. 덕분에 생후 5개월에 중성화 수술을 해야 했다. 입양 조건 중 하나였고, 수고양이 가출 원인이 교미라 했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성화 수술 하던 날, 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리에 병원에 들어서니 마취 약에 취한 녀석이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주제에 기어어 내게로 왔다. 서럽게 우는 녀석을 끌어안고 나도 울었다.




까망이는 외동딸의 든든한 남동생이었다. 성정체성이 모호한 녀석이 저도 남자라고 누나를 지키려 발악했다. 인터넷 기사님을 비롯, 외간 남자가 집안에 들락거리는 날이면 '하악질'해대는 통에 당황스러웠다.

"인마도 하악질 할 줄 아네?" 뭣 때문인지 남편은 대견해하며 까망이 등을 두드렸다.


누나에 대한 애정은 유난스러웠다. 우리가 외출이라도 한 날엔 끝나지 않는 잔소리를 감당해야 했고, 그루밍이 감당 안 된 딸은 울상을 지었다. 딸아이가 나만큼 크고서도 그랬다. 언제 어디서 무얼 하다가도 누나가 들어오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바짝 세운 꼬리가 반가움을 대변했다.



집에서 태어나 집 안에서만 사는 고양이는 창틀에 붙어 산다. 세상이 궁금한가? 새가 날아다는 모양이 신기한가? 까망이의 지정석은 창 틀이었고 방충망은 없는 게 나을까 싶을 만큼 너덜거렸다.


부모님과 합가를 하며 까망이를 어찌 키울지가 걱정이었다. 원래 살던 우리 집 거실은 단거리 달리기가 가능하라 만큼 넓었지만 이사하는 집은 그렇지 않았다. 캣 타워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은 터라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1층에서 키울까는 의견도 있었다.


고민은 뜻하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 줄 알더니 마당 있는 집에 이사오고선 집 안에 들어오길 거부했다. 부모님이 20년 넘게 가꿔오신 나무와 화분 아래서 살겠노라 선언했다. 담 높은 집이라지만 혹여 잃어버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내 맘 따위 가뿐히 무시하는 녀석은 그렇게 낭만 고양이가 되었다.


몇 달은 집 안 마당을 배회하던 녀석이 월담을 배우고야 말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지만 위험한 건 도시와 매 한 가지라 집안에 안고 들어오면 서럽게 울어댔다.

새벽 4시면 운동 나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나는 몰랐다. 새 모래로 곱게 깔아 둔 화장실 대신 부모님의 텃밭에서 배변한다는 사실도 한참 후에야 알았다.

할아버지 배웅을 마친 후 텃밭에서 볼일 보고, 집으로 돌아와 1층 현관을 두드려 할머니를 만나는 까망이는 제 몫의 사랑을 톡톡히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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