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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Feb 26. 2024

안녕, 까망? 안녕, 까망(두번 째 이야기)

끝나지 않을 기억

"살찐아~, 살찐아~" 우리와 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집 어르신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까망이를 부르는 소리였다.

온 동네 인싸 고양이로 거듭난 까망이는 대문 앞에 질펀하게 드러누워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특히 동네 할머니들이 어찌나 예뻐하시는지, 매번 주인인 우리 자랑을 일삼았다.


"아이고, 이 집 괭이가 나를 을매나 좋아하는지 모린다. 내만 보면 꼬리를 짤짤 흔들고 난도 아인기라."

"니한테만 카는 줄 아나? 내한테도 꼬리 흔들고 그칸다."

당신들끼리 아웅다웅 댔다.

"이카다가는 즈그 주인 버리고 내한테 올 낌세인기라. 안 글나?" 심지어 찐 주인이자 집사인 나보다 더 사랑받는 당신들을 증명하려 애썼다.

"하. 하. 하... 그, 그럴 리가요?"

'할매요, 할매가 자꾸 건드니까 싫다고 짜증 내는 건데요' 속에 말을 삼켰다.




"나 이제 까망이 안 좋아할 거야!!" 여덟 살 언저리였던 딸은 동네 인싸가 된 까망이로 인해 마음고생이었다.  어린아이를 유독 좋아하던 까망이는 이웃 어르신의 손주들에게 온몸을 갖다 바치는 몹쓸 취미의 소유자였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은 제 집 고양이라도 되는 양 으스댔고 딸은 그 모양이 싫었던 게다

"그러지 말고 네가 불러 봐. 누나가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오잖아. 우리 까망이한테 1번은 누나야." 큰 눈에 눈물이 그렁한 딸의 등을 토닥이노라면, 누나 목소리만 듣고도 달려온 까망이가 딸의 다리에 온몸을 비벼댔다. 이제부터 안 좋아할 거라며 입술을 꼭 다물던 다짐이 무색하게 딸은 곧 양 볼에 보조개를 드러내며 까망이를 껴았다.

"넌 우리 고양이잖아, 까망아. 넌 내 동생인데 왜 자꾸 다른 애들한테 좋다고 난리야, 응?" 윤기 흐르는 잿빛 털을 연신 쓰다듬는 딸과 골골송과 꾹꾹이로 누나를 다독이는 까망이가 사랑스러웠다.



녀석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했다. 러시안 블루 종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딸이 녀석에게 부은 극진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덕을 동생네 가족이 톡톡히 본 가 있었다.

6년 전, 동생은 출산을 앞두고 다쳐 수술한 다리에서 철심을 제거해야 했다. 동생이 다리 수술을 받는 동안 조카가 집에 와 지냈는데, 외조부와 이모인 내가 있다지만 돌쟁이에겐 몹힘겨운 시간이었다. 잘 먹고 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엄마가 그리울 때면 입술을 실룩거리던 조카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조카를 달래는 특효약이 까망이었다.

"까망아~!"하고 소리 높여 부르면 어디서 무얼 하다가도 멋지게 나타난 녀석은 조카에겐 특효약이었다. 아기의 옹알이에 맞춰 대답하고 눈을 맞출 줄 아는 까망이는 꽤 유능한 유모기도 했다.

"아아고, 그때 까망이가 없었다면 엄청 힘들었을 거야. 울먹 거리다가도 까망이만 나타나면 방긋 웃고, 까망이가 한참을 같이 놀아주곤 해서 얼마나 수월했는지 몰라. 녀석 어찌나 용하고 대견한지, 어지간한 어른 한 사람 몫은 했다니까." 엄마의 까망이 예찬은 오래도록 계속되었고, 그 노고를 동생 부부도 두고두고 갚았다.



까망이의 실종.

마실 나갔다 돌아오지 않은 까망이로 인해 우리 가족은 패닉에 빠졌다. 온 동네를 찾아 헤맸다. 밤도 낮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차에 치인 건 아닐까? 누가 데려간 건가? 어디 갇혔나? 그냥 친구 따라 멀리 가버린 걸까? 시 약이라도 먹었으면 어쩌지?

에 두지 말걸, 집안에 가둬뒀어야 했어! 이 모지리!! 고양이가 아무리 밖에서 지내겠다 해도 안 내줬어야지!!!

눈물 흘릴 가치도 없는 나를 탓하며 거리를 며칠 동안 헤맸다. 부모님도 남편도 이제 포기하자며 나를 설득했지만 한 번씩 목놓아 불렀다. 사실 딸보다 내 부름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까망이를 믿고 싶었다.


마음에서 까망이를 내려놓으려니 병이 났다. 끙끙 앓아누운 하루,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찾으셨다.

"정아, 까망이가 왔어!! 얼른 내려와 봐라~!!"

엄마의 부름에 일층으로 뛰어 내려가니 쓰러져 누운 까망이가 보였다.

"대문 앞에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이 놈이잖아. 다리를 다쳤는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얼마나 애달프게 울던지... 네가 한 번 살펴봐라. 내가 만지려니까 움찔거린다."


까망이는 내리 일주일을 식음도 전폐하고 앓았다.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모양이나 목에 난 상처에서 여러 정황들이 짐작됐다. 누군지 걸리기만 하면 족쳐버리리라! 이가 갈렸다.

까망이는 고은 황태 국물과 약으로 견뎌 이겨냈다.

"이제 집 안에서 살자, 까망아. 응?"

못쓰면 어쩌나 하는 다리가 회복되지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 밖으로 나가버린 매정한 녀석은 그 후로 몇 달 동안 마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까망이는 남편 소유의 차 지붕 위에 앉아있길 즐겼다. 새하얀 차 발도장으로 뒤덮어 놓아도 남편은 허허 웃었다. "그래, 다치지 말고 조심히만 다녀라." 했다


"아버지 운동 나가실 때 따라 나갔어. 다른 날처럼 밭에 가서 오줌 누고 물 마시고 오겠거니 했지. 네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마당에 쓰러져 있더래. 발견했을 땐 이미 늦어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곧 다가오는 아홉 살  생일을 기념으로 종합검진을 계획했다. 가을에 어금니가 빠져 잘 먹지 못하는 녀석을 샅샅이 살핀 후 이젠 집 안에 데려와야지 마음먹었다.


여름부터 부쩍 나이 든 티가 나는 까망이에게 나는 스무 살까지만 엄마랑 살자 했다. 네가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 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누나도 아빠도 그리고 나도, 네가 꼭 필요하니 아프지 말고 오래 같이 살자 다짐받았다.

배신자!! 애면글면 키운 나를 한 번 보지도 않고 혼자 쓸쓸하게, 너무도 갑작스레 가버린 까망이를 엄마는

"평생 순하게만 살더니 가는 것도 이리 순하게, 제 성격처럼 가버리는구나." 하며 아파하셨다.


남편은 비가 내려 까망이의 발자국을 씻어 내릴 때까지 세차를 하지 않았다. 그랬으면서, 집안에 남은 까망이 물건을 남편은 까망이가 떠난 날 아침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이따가 내가 치울 테니 출근해." 내 만류에도 남편은 아랑곳없었다

"너무 많이 울지 마. 그 녀석이 당신이 울거나 아프면 안절부절 불안해했어." 말끔히 정리를 끝낸 남편은 내 등을 두드리고 집을 나섰다. 까망이 발자국이 남은 차는 내버려 둔 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난 아직 까망이와 산다.


집안 구석구석, 녀석이 남긴 잿빛 털을  발견하며 웃고 운다.

남편이 미처 살피지 못한 곳에 남은 까망이의 잔재들을 꼼꼼하게 숨긴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언뜻 들리는 '아옹~'소리에 주변을 살핀다.

새벽에 현관문 손잡이가 덜컥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오줌 누러 나가던 녀석을 기억한다.

우리 까망이와 놀던 이웃 고양이가 나에게 친구 안부를 물으면 "봄에 놀아라~" 답한다

엄마의 텃밭에서 파를 뽑아 올 때면 뒤를 살핀다.

마당 어디선가 '투툭' 담에서 뛰어내리는 까망이 발소리가 들린다. 얼른 고개를 들어 살핀다

"나쁜 놈..."

새어 나온 눈물을 욕 한 마디와 삼킨다.


봄이 오면 동네 어르신들이 나에게 물을 게 뻔하다

"이 집 살찐이는 와 안보이노?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하려 한다

"나이가 많아서  이제 밖에 나다니면 안돼서요.

"글나? 그래도 한 번씩 내놓지를...." 아쉬워할 어르신들에게 나는 다정하게 웃을 예정이다.



"까망아~!" 내 부름에 밝게 답하며 달려오던 녀석의 이름을 가끔 불러본다. 다친 채로 돌아왔던 그날처럼, 또 다시 내게 와주지 않을까....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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