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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Jul 02. 2024

당신의 후회, 나의 자랑

엄마는 아침 저녁으로 문지방이 닳도록 우리를 찾으신다. 텃밭에서 기른 방울토마토를 주려고, 오이가 맛있게 자라 먹이고 싶어서, 아버지 드시라고 사놓은 복숭아가 물러 잼을 만들었다며 2층 사는 우리를 찾으신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딸과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엄마 손을 먼저 본다. 무엇을 바리바리 들고 올라오셨나, 무슨 맛있는 걸 해오셨나, 기대에 찬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엄마는 가족 중 체구가 가장 작다. 처녀 시절 155cm였다는 키는 줄어 150cm는 되실까? 저 작고 여린 몸으로 딸 셋을 낳으셨다는 게 간혹 믿기지 않는다. 당신을 닮아 키가 작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키우셨다는 엄마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우리 자매는 모두 160cm는 너끈히 넘게 자랐다.      


  어릴 적 아버지 곁에 나란히 선 엄마는 인형처럼 고왔다. 골격이 굵고 키가 큰 아버지는 공주를 지키는 용맹한 기사처럼 보였다. 기골이 장대한 아버지였지만 엄마와 있을 때면 잘 길들인 호랑이 같았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데 아버지의 큰 목소리는 엄마의 차분한 어조에 졸아들기 일쑤였다. 

“나는 세상에서 느그 엄마가 젤로 무섭다.” 태어나서 지금껏 듣는 아버지의 한탄은 한결갔다. “처음에는 내가 이기는 갑다 싶다가도 결국엔 느그 엄마가 다 이겨뿐다 아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당신의 처량한 신세를 털어놓는 아버지 앞에 나는 매번 깔깔 웃어 댄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엄마는 오늘도 종횡무진이다. 새벽밥을 지어 아버지와 사이좋게 나눠 드신 후 마당을 쓸고 닦는다. 텃밭에 조롱조롱 매달린 고추, 토마토, 오이, 깻잎을 바구니 가득 따서 손녀, 딸들, 그리고 당신들의 몫으로 나눠 챙긴 후 바로 위층 우리 집으로 나르신다. 엄마 발소리를 듣고 현관 앞에 앉아 꼬리를 미친 듯 돌려대는 우리 집 강아지 ‘미남이’이에게 갓 따온 오이를 뚝 잘라 먹이신다. 


  아침 일정을 어느 정도 끝낸 후 마당으로 나가면 그 많은 걸 언제 다 하셨는지 마당 빨랫줄엔 빨래가 옹기종기 널렸고, 정성스레 가꾸신 화초는 엄마가 뿌린 물을 머금고 촉촉하다. 바지런한 엄마는 알차게 아침 시간을 채우고 이미 출근하신 날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당신이 무능해서 나를 더 많이 지원해주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곤 하신다. 그림 그리고 싶어 했던 나를 막아선 일부터 혼자 번 돈으로 영국 생활하게 한 일이 생각날 때마다 심장이 벌떡거린다는 엄마를 나는 한참 안아드렸다. 

“엄마, 나는 엄마가 지어 준 밥 먹고 학교 다니고 학교 다녀올 때마다 엄마가 계신 집이라서 말도 못하게 좋았어요. 엄마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으면 내 성격에 어디로 튀었을지 몰라요. 삐딱선 타고 말썽이나 부리고 다녔을지도 몰라. 난 어느 때고 집에 가면 엄마가 계신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힘이 불끈불끈 났다니까? 그래서 영국에서도 잘 지냈고, 그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도 행복했어요. 돈 많이 버는 엄마보다 우리 곁에 있는 엄마라서 나도 동생들도 잘 자란 거예요. 그러니 엄마를 자랑스러워하셔도 돼요. 엄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요.”

당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내 품 안에서 잘게 떨리는 자그마한 엄마를 힘주어 안았다. 엄마는 언제나 나의 자랑이란 걸 잊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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