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집 마당에 심긴 감나무가 열매를 하나도 맺지 않았다. 꽃은커녕 잎사귀 하나 돋아 나지 않아 의아했다. 바로 전 해 가을에 가지가 늘어지도록, 따도 따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은 양의 감이 열렸던 게 마지막 인사였나? 20년 넘게, 한 해도 빠짐없이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감나무였던 터라 우리 가족은 큰 상실감에 휩싸였다.
겨울 무렵 아버지는 앙상하게 마른 감나무를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는 게 어떤지 물으셨다. 우린 나무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줘보자 했다. 병들기 전까지 넘치도록 풍성한 열매를 맺어 우리를 기쁘게 해 준 나무를 한 해만 더 돌보자고……
엄마 손은 약손인 게 틀림없다.
엄마는 되든 안 되든,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하셨다. 감나무 둥지를 타고 시퍼렇게 덮인 이끼라도 벗겨주자 하고, 묵은 때를 벗겨내듯 나무 둥지를 벅벅 긁으셨다. 후두둑, 우두두, 이끼 덮인 나무껍질이 떨어졌다. 보는 사람 속이 시원하다 못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이고, 나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입이 없어서 욕을 못했지, 말 문 터졌으면 어쩔 뻔했어~” 연한 속살을 드러낸 나무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에는 애정과 연민이 가득했다. 엄마 손은 약손, 감나무껍질은 똥 껍질~
봄이 왔다.
앙상한 가지에 올라온 연두색 순이 발견된 날,
“정아, 정아! 감나무에 싹이 텄다. 싹이~!!”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이층 계단 가장 높은 곳에서 나무를 내려보며 소녀처럼 웃으셨다.
죽은 줄로 알았던 나무가 엄마가 쏟은 애정을 담뿍 받아 싹을 틔웠다. 연두와 초록 그 사이의 싱그런 빛깔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우와!! 엄마 생각이 맞았어요!! 둥지에 낀 이끼 때문에 나무가 힘들었던 게 맞았어요!! 한 해 동안 싹도 못 틔우고 고생했는데… 기특하다, 기특해~~”
모녀 삼대가 나란히 서서 감나무가 틔운 싹에 요란을 떨었다.
하얀 감 꽃이 흐드러지게 폈을 때 무뚝뚝한 우리 집 남자들 얼굴도 감꽃처럼 환해졌다. 잘라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셨던 아버지는 시든 잎을 정리해 주셨다. 경상도 남자 식의 애정표현이었다.
여름이 가까이 오자 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열매가 달렸다. 손톱 크기였다가 지금은 갓난쟁이 주먹보다 조금 작게 올망졸망하다. 장마를 지나며 쓸데없는 병충해가 지나갈까 했던 염려가 무색하게 자라는 중이다. 가을이면 성인 남자 주먹만큼 커질 텐데, 태풍을 넘긴 녀석들만 살아남겠지.
약손을 가진 엄마의 애정을 먹고 튼튼해진 감나무가 모진 태풍도 견뎌낼 거라 믿고 응원해 보련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