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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Dec 10. 2021

그녀의 실내화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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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이다. 남편은 회사 갈 준비,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로 분주한 아침. 나는 아이들이 아침을 다 먹고, 씻고, 옷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거의 마칠 즈음 일어난다. 아이들 아침 식사는 남편의 몫이기에(암묵적으로) 나는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더 이상 누워있으면 안 되는 시간이 임박해서야 몸을 일으킨다.

‘그 시간이 왔군.’

작은 녀석 머리를 묶어줄 시간이다. 보통의 남자들에게 미지의 영역인 머리 묶기는 우리 집에서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아이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걸 좀 더 설득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1층 계단을 내려가는데, 보통 때와는 다른 긴장된 공기가 느껴진다.

“실내화 가방은 자기가 잃어버려 놓고서 왜 나한테 짜증이야. 여보, 나 갔다 올게.”

“응? 으.. 응.”

보통 때 같으면 한사코 거절하는 내게 모닝 뽀뽀를 날리며 문을 나서는 다정한 사람인데 인사를 한 건지 만 건지 휙 나가버리는 모습에 엉겁결에 대답을 했다.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현관문을 나서야 할 시간이 지났다. 항상 첫째보다 먼저 등교하는 둘째가 여전히 집 일층과 이층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내 실내화 가방 어딨어. 정말 내 실내화 가방 어디다 둔 거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무미건조하게 둘째에게 대답한다.

“김서은, 너 실내화 가방 1층에 둔 거 맞아? 다른데 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안 만졌어!”

“우리도 니 실내화 가방 안 만졌어. 1층에 없으면 네가 안 가져온 거야.”

“아, 나 가져왔다고. 진짜!”

“거기 없으면 놓고 온 거야. 학교나 학원에 놓고 온 것 같으니까 가서 찾아봐.”

둘째는 억울함과 짜증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결국 빈 손으로 등교를 했다. 생각해보니 머리도 못 묶어줬다.

'실내화가 없으면 화장실이나 급식실에 맨발로 가야 하는데… '

하는 걱정이 들면서도 본인 물건 못 챙긴 잘못이니 별수 있나 싶기도 하고,

'실내화를 어디다 버린 게 아니면 학교에 놓고 온 거겠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결국 청소에 생각을 털어버렸다.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니 남편에게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사진 두 장과 메시지 한 문장.

‘학교에서 안 가져온 듯 합니다.’

사진은 둘째가 전 날 하교할 때의 모습을 현관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그녀의 두 손은 비어있다.

‘역시 안 가져왔구먼. 그럼 학교에 있겠네.’

학교에서 실내화 찾아서 신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둘째가 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 다행이다.’

“실내화 가방 찾았어?”

당연히 찾았겠지 하는 생각에 다음부터는 물건 잘 챙기라고 잔소리나 한 번 해줄량으로 물어봤는데,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실내화 없어. 실내화 가방 넣는 데에 없어.”

"응? 교실 책상 걸이에도 없어?"

"응."

“그럼 학교에서 맨발로 다녔어?”

“응.”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그래도 실내화가 없어서 곤란한 일은 없었구나'생각했다. 다시 긴장된 마음을 조금 놓았다.

“그럼 실내화 가방은 어떻게 된 거냐? 아빠가 너 어제 학교 올 때부터 실내화 가방 안 들고 왔데. 그럼 학교에 놓고 온 건데. 학교에 없다고?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아, 맞아. 나 신발 신고 집에 왔잖아. 학교에서 신발을 실내화 가방에 넣어 놓고, 집에 올 때 그거 꺼내 신은 거잖아. 그니까 놓고 온 거 아니야.”

“그럼 뭐지? 어디에 버리고 온 거야?”

“아냐! 내가 실내화 가방을 왜 버려.”

“거, 참. 이상하구만.”

둘째와 실내화 가방의 행방을 추적하며 계속 이야기해 보았지만 실내화 가방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 분실물 보관함과 등교 길을 따라 걸어가며 주변까지 살펴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녀의 실내화 가방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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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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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준비가 늦어 아침밥을 먹으며 둘째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었다. 안 그래도 등교 준비가 늦어 빨리 밥을 먹어야 하는데 둘째가 자꾸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왔다 갔다 한다.

“서은아, 8시 넘었다. 빨리 밥 먹어.”

잔소리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둘째는 얼굴을 찡그리며 억지로 수저를 들고 입술을 불퉁거리며 중얼거린다.

“내가 학교 가면 올 거 같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뭉그적거리는 아이에게 한 소리를 하려는 차에 문득 알아차렸다.

‘아, 택배구나! 이 녀석이 아까부터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택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어제 실내화 가방을 잃어버린 걸 확실히 알았을 때 바로 실내화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그 택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린들 어쩌랴? 택배는 오늘 도착 예정이라는 알림을 보냈지만, 아침 8시부터 배송이 될 리 만무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늦은 등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불안해진다.

“엄마, 실내화 전에 신던 거 버렸어? 아, 택배는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나는 현관문을 계속 열고 닫고,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울상이 되어가는 둘째가 안쓰러워 한마디 덧붙인다.

“선생님한테 실내화 잃어버렸다고, 주문했는데 오늘 도착한다고 말씀드려. 그럼 혼나진 않을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화장실이랑 급식실에 맨발로 가야 하잖아. 어제는 그냥 갔지만 오늘도 맨발로 가기 싫단 말이야.”

“그럼 엄마 슬리퍼 가져가 봐.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엄마 슬리퍼는 크잖아. 그리고 선생님이 슬리퍼는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

내 말에 대꾸하는 아이의 얼굴에 물기가 훅 차오른다. 이 녀석이 정말 곤란해하고 있구나. 녀석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까짓 실내화가 뭐라고, 선생님은 급식실이나 화장실에 갈 때는 학교 내빈용 실내화 사용하게 해 주면 좀 안되나.’

아이의 안절부절하는 모습에 이제는 애꿎은 선생님까지 원망하게 된다. 나는 애써 냉정한 목소리로,

“선생님한테 말씀드렸는데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된다고 하면 신으면 되지. 그래도 안 가져가는 거 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 엄마 슬리퍼가 그러면 다른 걸 가져가 보던지.”

“아, 그럼 아쿠아슈즈 가져갈래.”

둘째는 집에 있던 검은색 무난한 슬리퍼 대신 형광 노란색의 아쿠아 슈즈를 에코백에 넣고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도 슬리퍼보다는 실내화 모양새와 비슷한 아쿠아 슈즈가 그래도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에 산책할 때도,

“엄마, 택배 내일 아침에 올까? 안 오면 어떡하지?”

하고 몇 번이나 걱정스레 묻던 둘째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때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어제는 어쩌다 어영부영 맨발로 화장실이나 급식을 다녀왔어도 오늘 또 그러긴 괴로웠겠지. 아이들 시선도 신경 쓰였을 거고, 선생님에게도 어쩌다 한 번 실내화 없다고 말하는 거랑 오늘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다른 일이 리라. 나는 그저 '어제 실내화 없이도 학교에서 잘 지냈으니 오늘도 괜찮겠지'하고 내 맘대로 단정 지어 버렸다.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다. 자세히 살피고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그래야 보인다. 더구나 감정 표현에 서툴고 이를 어려워하는 나를 닮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더 그렇다. 작지만 커다란 어려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훔치는 녀석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하지만 그 앞에서 내가 대신해서 어려움을 겪어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려움을 겪어내건, 다른 방법으로 해결을 하건 그건 그 아이의 몫이다.



새 실내화가 오면 실내화 잃어버리지 말고 잘 챙기라는 충고는 잠시 접어두고, 실내화에 이름이랑 학년반을 지워지지 않게 예쁘게 써 주어야겠다. 그리고 어제오늘 마음고생 많았다고 한 번 안아줘야지.




*에피*

방금 전에 하교한 아이 손에 실내화 가방이 들려있다. 이어 아이의 경쾌한 말소리가 이어진다.

“엄마, 이거 어제 오빠가 제대로 안 찾아봤나 봐. 학교 분실물함에 있었어.”

거실 바닥에는 오전에 도착한 새 실내화가 예쁘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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