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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Feb 04. 2022

내 생애 최고의 수학여행 6


이것이 나의 마지막 수학여행의 기억이다.


2박 3일의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버렸다. 몸은 피곤한데 눈이 쉬이 감기질 않는다. 지난 수학여행의 기억이 담긴 테이프를 뒤로 감아 다시 재생시켜 보기를 여러 번. 어디서부터 이 여행이 잘못된 건지,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었는지를 곱씹어 볼수록 마음속에 들어차는 것은 억울함이었다. 나는 왜 방학을 반납하면서까지 사전 답사를 두 번이나 다녀온 건지, 왜 좋은 숙소를 구한답시고 새 호텔 방을 예약했는지, 아이들 발에 구겨지고 쓰레기 신세가 될 수학여행 활동지를 왜 그렇게 지난 밤동안 제작한 것인지. 화가 나고 억울했다. 누군가는 내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질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에 대답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겠다. 나는 모든 돌발 상황을 예측할 수도 이를 대비할 수도 없다. 누가 며칠 전에 멀쩡히 사용한 음주 측정기가 말썽을 부릴 거라 예상할 것이며,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요플레가 식탁 앞에 오를 거라 예상할 수 있겠는가.(전국에 소문이 자자한 아기동자보살님도 어려울 터이다.)



결국 수학여행도 내 인생이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오만가지 것들로 가득 찬. 그래서 문득 뜻하지 않은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갑자기 닥치기도 하는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도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도 말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최악의 수학여행이었던 당시의 날들은 글로 남기기엔 최적의 수학여행이 되었다. 최악이지만 동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학여행이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는 가장 나쁜 여행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여행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행이라 말했다. 그렇게 보면 내 수학여행은 최고의 수학여행이 아닌가. 좀 더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나에게 이보다 더 나쁜 수학여행은 다시없지 않겠는가. 아마 이보다 더 최악의 경우를 경험하지는 못하지 않을까. 내가 다시 어쩔 수 없이 다시 수학여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보다는 낫겠지 하고 더 희망적인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조금은 씩씩하게 마주할 수 있을 거란 사실이다.

2018년, 교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인생의 修學(닦을 수, 배울 학) 여행을 체험했다.




(차마 밝히지 못한 속마음)

하지만 역시나 다시 수학여행을 가라면 싫다. 여행은 가족끼리 하는 걸로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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