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빛나던 나의 2017년

우당탕탕 뉴욕 여행기

by 진솔

돌아보면 종종 무모한 짓을 저지르곤 했다.

예를 들어 25살에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혼자 떠난 뉴욕여행이 그랬다.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여행기간을 한 달이나 잡았고 그 무렵에는 모아둔 돈도 없었다.


뉴욕 여행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16시간의 비행시간을 망각하고 목베개도 없었고 장거리 비행을 대비해 무장한 옆자리 여자가 누워 편안하게 자는 동안 나의 무지를 자책했다.


몸도 마음도 불편한 비행이 끝나자 설상가상으로 목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이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 달 치의 짐이 들은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몇 번의 쓰러질 위기를 극복하고 겨우 찾아온 숙소, 목이 저절로 회복되기를 기도하며 침대 위에 누웠다. 살짝 눈물이 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첫날은 기대와는 다르게 쓸쓸하고 고달팠다.

젊은이의 기도는 통한 것일까?

다음날이 되자 목은 놀랍도록 회복해있었다.


동양인 여자애의 눈에 비친 뉴욕 맨해튼은 참 요상한 도시였다. 식당에서 파스타를 시키자 거대한 크기의 포크와 엄청난 양의 파스타를 주었다. 경찰들은 말을 타고 다니고 타임스퀘어 곳곳에 이상한 옷차림을 한 행위예술가들이 가득했다.


11월 뉴욕에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다니자 어떤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그렇게 많이 춥니?"

사람들의 생각처럼 영어를 못하는 것은 여행에 큰 장벽이 되지는 않았다. 2017년에도 든든한 파파고 번역기가 있었고 구글 지도를 따라가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은 동양인을 보면 동일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목을 움직일 수 없었던 첫날을 제외한 나날들은 오전 9시면 숙소를 나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링, 브루클린 브릿지, 월 스트리트 등 구경할 스팟이 너무 많았다.


길거리에는 설탕이 흘러내릴 것 같은 컵케이크 가게가유난히 많았는데 먹어보면 예상보다 더 달았다. 먹자마자 느껴지는 달콤한 쾌락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컵케이크를 먹었다. 한국에 돌아와 가끔 컵케이크가 그리워질 때 먹어보면 이상하게 뉴욕 길거리에서 먹었던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여행이 무르익고 무르익어 2주일 정도가 흘렀을까?

남은 여행을 위해 일정을 확인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에 취해있었던 나머지 통장 잔고를 망각했다는 것을,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그간의 씀씀이로 한 3일 정도 살면 될 것 같은 정도의 금액만이 남아있었다.

아....


과감하게 음식을 포기했다.

팁을 주어야 하는 식당이 아닌 맥도널드와 치폴레와 혹은 길거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한인마트에서 사 온 컵라면을 먹었다. 당연히 아침은 사치였다.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아서 다녔다.가장 많이 갔던 곳은 센트럴파크

센트럴 파크에는 귀여운 청설모들이 많았다. 어떤 날은 오전 내내 센트럴파크를 돌아다니면서 청설모를 찾아다니다 발견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뇽..?"


앙증맞은 청설모들이 있어 센트럴파트에 있으면 행복했다. 사랑받는 것을 아는지 청설모들을 사람들의 시선에도 도망가지 않고 귀여운 자태를 뽐내는 듯했다.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 많은 뉴요커들이 내 앞을 지나갔는데 그들의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를 보며 잔뜩 쭈그린 내 어깨를 쭈욱 펴보았다.

컵케이크 너무 많이 먹어서 동글동글 해진 얼굴

센트럴파크만큼이나 많이 갔던 메트로폴리탄

2017년의 메트로폴리탄은 기부입장제라 원하는 만큼돈을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 1~2달러를 지불했는데 그 돈 내고 입장하기 정말 죄송할 정도로 메트로폴리탄은 아름답고 무궁무진한 곳이었다.

여행 내내 심심할 때면 메트로폴리탄에 가서 여러 작품들을 구경했는데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좋아한 작품은 구스타브 클림트의 '메다 프리마베시의 초상'이다.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답다. 보라색이 오묘하고 매력적인 색이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산 '메다 프라마베시의 초상' 엽서는 아직도 책상 위에 소중하게 놓여있다.

어느 날은 메트로폴리탄을 나오는데 한 길거리 트럼펫 연주자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트럼펫 연주가 제법 듣기 좋아 가던 길을 멈추고 듣고 있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고 가볍게 한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곤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https://youtube.com/shorts/MuKPhp6fU4A?si=H82C7wxmBvSg0YWS

그가 연주해주는 아리랑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How sweet..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지 가끔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어보는 성가신 사람들만 제외하면 만났던 뉴욕 사람들은 대부분 다정했다.


특별히 어딘가를 가지않아도 반짝이는 거리 때문에 어딜가나 행복했다.


내 마음도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뉴욕에서 같은 숙소에 잠시 머물렀던 한 여자분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그녀는 일주일간 뉴욕 여행을 했는데 여행 마지막 날에 브로드 웨이에서 라이온킹을 보았다고 했다. 공항으로 떠나기전 라이온킹 뮤지컬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라이온킹을 보면서 제가 눈물을 흘릴지 몰랐어요."

나 역시 귀국하기 전날,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브로드웨이에서 알라딘을 보기로 했다. 뮤지컬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알라딘과 자스민이 날아다니는 마법 양탄자(실제로 날아다님)에 앉아서 'A Whole New World'를 부를 때에는 마치 알라딘의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뮤지컬을 관람하던 중 무어라 형용할 수 기분에 휩싸였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나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꾸었던 이렇게 행복했던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지?

앞으로 이렇게 다시 뉴욕에 올 수 있을까?


알라딘 공연이 끝나고 빨개진 눈으로 숙소로 돌아오면서 언젠가 꼭 다시 뉴욕을 올 거라고 백번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뉴욕여행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었다.

그 후로도 해외여행을 여러 차례 다녔지만, 뉴욕에서의 경험을 단순히 '여행'이라는 틀 안에 넣기에는 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25살의 난 첫 직장에서 적응에 실패했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어른들 말처럼 적당한 대학교 나와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양육하고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여자애 말이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먼 곳에서 홀로 설 때,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멋진 능력이 있었다.


뉴욕여행으로 25살의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결코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반짝이던 장면을 기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7i2zCI4G1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