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Apr 29. 2024

우리 아빠같은 아빠는 되지 않길 바래

아들이랑 유치하게 싸우는 남편

나는 친정아빠와 별로 친하지 않다. 아니, 아예 친밀감이 없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른다. 함께 살 수밖에 없던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좋든 싫든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밥도 같이 먹고 엄마를 매개로(?) 대화도 하곤 했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빠는 자식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그럴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느끼지 않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람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아빠의 역할이란 자고로 가장으로서 성실히 돈 벌어다주고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지금껏 내가 지켜본 아빠의 모습을 가지고 추론한 것이다.


가끔 어렸을 때 과음하고 집에 늦게 들어온 날이면 내가 너희를 위해서 청춘을 희생했다, 너희를 먹여 살리느라 이 고생을 하고 산다 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빠였다. 어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내 존재가 아빠를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적 드라마에서 딸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다정다감한 아빠가 나올 때면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가끔 아빠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드라마에서만큼 이상적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꽤나 신기했고 현실 속에 저런 부녀지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약간 부럽기도 했다.


아빠와의 먼 심리적 거리만큼이나 엄마와는 속내 다 털어놓을 정도로 굉장히 친밀했기 때문에 자라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결혼 이후로는 더욱 멀어진 사이가 되었고 아빠랑 따로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건 일 년에 두세 번  특별한 사유 아니면 드물다.


내 남편만큼은 자녀에게 그런 아빠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당연히 내 친정아빠 같은 아빠가 되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다. 자녀랑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딸이든 아들이든 친해지려고 노력하며,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소통하며 지내는 아빠의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어렸을 때는 일이 한창 바쁠 때라 아이랑 같이 놀아줄 시간도, 육아 자체를 도와줄 시간조차 내기 어려워서 힘들었지만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크면서 아이도 아빠의 존재를 더 크게 인지하고 말도 트이면서 소통하게 되었고 지금 보면 아빠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빠와 아이만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런 건지 항상 아빠보다는 엄마를 먼저 찾고 의지한다.


이상하게 내가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해서 혼내거나 훈육을 하면 별 생각이 안 드는데 남편이 아이 행동에 화가 나서 혼내거나 화를 내면 그 꼴이 보기가 싫다. 괜히 혼 낼일도 아닌데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고, 안 그래도 애착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으면서 무턱대고 화를 내면 애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말에 내가 집안일하느라 둘이 잠깐 놀거나 시간을 보내도록 하면 어김없이 갈등이 발생한다. 애는 아빠 밉다면서 잔뜩 삐져있고, 남편도 자기 나름대로 애한테 화가 나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아이가 혼날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화가 난 건 이해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왠지 엄마인 내가 화를 낼 때보다 아빠가 화를 내면 더 무서워하고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인다.


"아빠, 화내니까 무서워. 아빠 싫어. 엄마하고만 살고 싶어."


눈시울이 뻘게져서 이런 말을 하는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남편도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는다.


"진짜 너 기막힌 소리 한다.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해줬는데 아빠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주고 여행 보내주고 한 거 다 아빠가 돈 벌어서 해준 거야.

앞으로 그런 거 안 해줘도 된다 이거지?"



이런 식의 논리로 아이를 몰고 가는데, 애는 마땅히 받아칠 말은 없지만 억울한 지 이쯤 되면 나에게 구원을 바라는 눈길로 뛰어온다. 아니 애를 혼낼 거면 문제 행동에만 집중해서 훈육을 하던가 해야지, 갑자기 돈을 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아빠가 가진 카드라고는 오로지 경제력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게 만든다. 차라리 네가 그렇게 행동해서 아빠가 속상하고 실망스러웠어라며 감정에 호소하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같이 축구 안 해줄 거야라고 하면서 협상을 해야지 어른이 돼서 유치하게 돈 가지고 협박을 하다니.



한참을 그렇게 냉랭한 상태로 있길래 하는 수 없이 아이 달래주고 남편한테 잘 말해서 화해를 시키긴 했는데 이조차도 참 힘 빠진다. 왜 나는 평상시에도 항상 아이랑 감정소모전으로 기가 빠지는데 주말에 아빠랑 아이 관계 개선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다니 내가 이런 것까지 남편한테 일일이 코치해줘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억울하다.


애가 더 크고 사춘기 오면 자연히 아빠랑 더 멀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진정으로 아이랑 친해지려는 노력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평일에는 길어야 한 두 시간 퇴근 후에 볼 수 있는 아빠지만 그마저도 밥 먹고 샤워하느라 티브이 보느라 제대로 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나마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남편은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많이 달라진 편이다. (그전에는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주말에 아이가 아빠 싫다고 말할 때 순간 나와 내 친정아빠의 관계가 떠오르면서 소름이 끼쳤다. 우리 애도 나중에 아빠랑 전혀 연락도 안 하고 소통하기 싫어하는 거 아닐까 미리 걱정이 된다. 이런 말 남편한테 허심탄회하게 꺼내봤자, 내가 뭘 그리 또 잘못했냐며 말싸움으로 번질까 봐 쉽사리 꺼내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벌어서 아이가 하고 싶은 거 해주는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아이랑 눈 마주치면서 같이 뒹굴며 웃고 떠들며 노는 아빠의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요즘 남자들 참 불쌍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육아 살림은 다 아내에게 맡겨두고 기계적으로 돈만 버는 아빠는 글쎄.. 나중에 내 친정아빠처럼 밖에서는 몰라도 가족 내에서 외로운 위치에 서게 되지 않을까. 훗날 내 남편은 우리 친정아빠처럼은 되지 않길 바라며. 앞으로 아이랑 좀 친해지길 바라.







매거진의 이전글 월 천만원도 못 벌어오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