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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09. 2024

학생들이 너무 예뻐서 큰일났다

몇 년만에 돌아간 학교에서 느낀 소회

근 3년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수년간 근무하며 여러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아직도 학생들과의 만남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분명 매일 만나서 엎치락뒤치락 일상을 함께 하던 학생들인데도 몇 년 쉬다보니 그 나이대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할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머릿속에서 다 사라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과지도야 어떻게 해서든 다시 연구해서 해낼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업무 부분도 동료들 눈치 봐가면서 적당히 굽신대며 처음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어찌어찌 따라갈 수는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가장 자신없는건, 한창 사춘기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학생들을 어떤 말과 태도로 대해야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는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면서 상담을 하고 혼을 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 만나면 덮어놓고 반말을 사용했는지, 존댓말을 썼었는지조차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인근 학교 고등학생들을 보면 다 어른같기도 하고 때론 반항적인 모습의 학생들이 지나가면 어떻게 저런 아이들을 가르칠까 싶어서 괜시리 겁이 났다. 최근 몇 년 사이 더 바닥으로 떨어질수도 없을 것 같은 교권은 밑바닥 없이 더 추락했고, 여러가지 격무와 민원에 시달리다 자살한 교사들까지 생겨나서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고 있어서 그런지 더 무서웠다. 학교로 돌아간다는게 너무 부담되고 꺼려졌다.


그래도 휴직 전까지는 나름 젊은 축에 끼는 편이였어서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면도 있었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자고로 젊다는 것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있어 자동으로 하나의 큰 무기가 된다. 아이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본인들과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덜 느껴지기도 하고 공유하는 문화와 취향도 엇비슷할때가 많다.


에이치오티와 젝스키스라는 아이돌 1세대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아직도 청소년기의 문희준이 결혼해도 애둘 아빠가 되고, 젝스키스의 꽃미남오빠 고지용이 애아빠가 되어 아들이랑 함께 버젓이 티비에 나오는 세상이 가끔 무지 어색하고 낯설다. 그들은 영원히 결혼하지 않고 영한 오빠로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그들이 나이가 들어 가족 예능에 자녀들을 데리고 나올만큼 나도 나이들어버렸고 이제는 말 그대로 한 물가버린 퇴물 세대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이  내가 하는 말을 듣기나 할까.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는 할까.

만만해보이는 나이만 든 여자선생님이라 무시하지는 않을까.

내가 화내봤자 무서워하지도 않겠지.

디지털기기에 중독된 아이들이라 더 지도하기 힘들다는데 어쩌지.


온갖 걱정과 상념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냥 전처럼 조건없이 예뻐해준다고 아이들이 좋아해줄지, 나의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적당히 선을 지키는게 나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고 두려웠다.


걱정끝에 결국 그 날은 오고야 말았고 나는 어떤 결론도 다짐도 정확히 내리지 못한채 만나야만 했다. MZ세대보다 한참 더 어린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시도 때도 없이 대들고 반항하고 말도 안 듣고 인사도 안하고 무시할까봐 무서웠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아니, 이건 괜찮은 것보다 더 나은 수준이다.


그래도 아직 애들은 애들이라서 그런지 어른인 교사를 어려워하고 잘 보이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온 몸에 반항끼가 서려서 전혀 지도가 불가한 학생들도 역시 있지만 정말 극소수다. 어떤 반은 운 나쁘게 좀 더 많기도 한데 대부분은 한 반에 한 두명을 제외하고 다 착하거나 까불고 날뛰는 아이더라도 최후의 선은 지키는 편이다.


나에게 인사를 하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잘 보이고 싶어하고 새로 온 선생님이라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찌 이 아이들을 이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전에도 이런 감정이 들었나 싶을정도로 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대면 나대는대로, 조용하면 조용한대로 아이들은 다 저마다 장점이 있고 예쁜 구석이 있으며 본인만의 매력이 있다.


등교거부로 속을 썩인 아이를 키우다보니, 학교에 군말없이 제시간에 와서 휴대폰을 제출하고 제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한없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밤새 게임하거나 SNS 하느라, 학원 숙제 하느라 시달렸을텐데 어찌하여 이 아이들은 그래도 학교에 온다고 씻고 단장하고 사람다움을 갖춘 채로 학교라는 내키지 않는 공간에 와서 이렇게 선생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인가.


예전에는 정말 생각하지 못한 생각들이다. 나름대로 모범생의 테두리 내에서 큰 이탈없이 인생을 살아온 나는 자식을 낳고 우여곡절을 겪기 전까지는 학생들을 이해못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왜 아침에 지각을 하는건지, 왜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지, 왜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지, 왜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지 등등 이해못할 것들 투성이었다. 그 나이에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고 세상 걱정할게 없을 때인데 왜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지 내 좁은 경험의 폭으로는 진정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좀 이해할 것 같다. 인생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좀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마음먹은데로, 내 생각대로, 할 수 있을것 같지만 생각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생은 폴더별로 잘 짜여진 계획표처럼 착착 돌아가는게 아니라서 지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루 아침에 습관을 고친다는게 어렵기도 하고 어느 시점에서 한 번 놓쳐버린 영어, 수학은 기를 쓰고 해보려고 해도 되돌리기 쉽지 않을 때가 더 많아서 열심히 하려고 마음 먹어도 안될수도 있다.


예전에는 학생들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보고자 발악을 했다면, 이제는 지금 이대로라도 잘 지내는지 지켜보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힘들텐데 그래도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듣는게 기특하고 벌써 수포자가 될 정도로 수학 수업은 전혀 이해를 못할텐데 방해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조용히 앉아 있는것도.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연으로 인해 학교에 있는게 못내 힘들텐데도 군말없이 그 시간을 잘 견뎌주는게 고맙기까지 하다.


매번 선생님의 말에 일일이 토를 달고 따지고 들기를 좋아하며 반발부터 하고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도, 예전같으면 못 견디게 미웠을것 같은데 이제는 그마저도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아이는 저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확인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인가보다 싶어서 기분 나쁠때도 있지만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를 돌보는데에만 전념했던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이 영 쓸모없지는 않았음을 어렴풋이 확인한다.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다고나할까. 또래보다 미숙한 아이를 키우면서 느껴야만 했던 피하고 싶은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들이 나를 조금은 더 성숙시켰나보다.


전에는 좀 더 무서운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인상 한번 팍 쓰고, 소리 한 번 크게 내면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선배들이 부러워서 따라하고 싶었고 흉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벌을 줘도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에 더 가깝다. 그냥 그 아이 모습 그대로 내가 인정해버리는게 어쩌면 더 빠른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도 살고 나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남의 모습은 흉내내지 않기로 했다. 카리스마는 꼭 성질을 내고 무섭게 생겨야만 생겨나는것도 아닌것 같다. 평소 관계가 좋다면, 더 나아가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잘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애들은 어른을 실망시키는게 기본값이고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임무인냥 행동할 때다. 학생이 실망스러운 행동을 했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할 필요도 없다. 어느 누구를 만났어도 그 아이들은 실수하고 미숙하기에 실망시켰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이 유독 좋은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 마음의 그릇이 더 커져서 수용적인 사람이 된건지. 어느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이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운건지 원인은 제대로 파악 못하겠는데 그냥 예쁘다. 잘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고, 공부 스트레스 좀 덜 받았으면 좋겠고, 원하는만큼 성적도 올랐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다들 자기만의 향기와 매력으로 빛나는 사람으로 커나갔으면 좋겠다.


애들이 이렇게 이뻐서야, 권위와 카리스마로 무장한 시크하고 쿨한 교사가 되기란 이번 생에는 영 글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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