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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수업시간에 털렸거든요.

중학생 어록

by 레이첼쌤

좋게보면 외향적이고 활발한데, 좀 나쁘게 보면 신경 거슬리게 하는 학생이 있다. 크게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나사 풀린 것처럼 살짝 이해가 안되는 언행을 보일 때가 있어서 쟤는 왜 저럴까 싶은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아이의 성향은 긍정적인 면이 더 우세해서 나 포함 다른 선생님들도 좋게 바라보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조금 더 나사 풀린듯한 느낌을 풍기고 다닌다는 평판이 있었다. 마치 와인도 아니고 막걸리 마신 사람처럼 이상한 일에 반분위기를 몰아가거나 말실수를 하곤 해서 최근에 무슨 일이 있나, 아니면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찾아왔나 의문이 들던 차였다.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여전히 한 번쯤은 이상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만한 녀석인데 그 날따라 이상스리만치 조용히 수업에 임했다. 평소에 항상 하던 행동 패턴이 있는데, 그게 안 보이니까 왠지 더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먼저 다가가 물어보았다. 표정도 평소 같지 않았다.


"오늘 너 되게 조용하네. 혹시 무슨 일 있었니?"


"저 전 시간에 OO쌤한테 완전 털렸거든요."


주변 친구들도 박장대소하면서 맞아요, 쟤 전시간에 엄청 털렸어요하며 하하 웃는다. 그 전시간 선생님은 굉장히 마음이 넓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기로 유명하신 분인데 그 분에게 털리다니, 대체 어떤 언행으로 선생님에게 쇼킹함을 안겨주었길래 탈탈 털렸을까 싶어서 나도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속사정은 가히 짐작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만했다. 은근히 수업시간을 방해했거나 그 아량 넓으신 선생님의 한계를 건들만한 어떤 언행이 있었겠지 싶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탈탈 털림(?)을 당하고 의기소침해있는 그 아이에게는 아직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털리든 말든 개의치않고 매 시간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멋대로 행동하는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일말의 희망과 긍정적인 변화로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입증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그 날 따라 '털렸다'라는 표현이 귀에서 맴돌았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탈탈 털렸다니. 그래, 나도 너희들한테 매일 탈탈 털린다, 학생들에게,학부모에게, 교장, 교감선생님께 탈탈 털리는 인생이다. 집에 오면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탈탈 털린다. 생각해보니 여길 가도, 저길 가도 털리기만 하는 것 같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어차피 탈탈 털리다 가는 인생 아닐까.


갑자기 연민의 마음과 그 아이를 향한 무한대의 공감이 생기는 기분이다. 비록 이번에는 탈탈 털렸지만, 다 너 잘되라고 더 실수하지 말라고 해주는 털림이니 부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어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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