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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어요, 그냥 싫다고요.

중학생 어록

by 레이첼쌤

그간 교직에 있으면서 반항적이고 무례하고 예의범절이라고는 쌈싸다가 먹었나 싶은 정도의 학생을 간간이 만나왔지만 최근에 또 새롭게 귀에 꽂히는 말들이 있다.


욕설이나 비속어를 제외하고는 "아 진짜, 또 왜 나한테만 그래요? 맨날 나만 갖고 그래." 이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이외에도 학생들에게서 들었을 때 기분 나쁠만한 말들을 모으자면 끝도 없지만 최근에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기 싫어요."

"싫은데요."

"싫어요."


전에는 하기 싫다는 말을 대놓고 선생님에게 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무언가를 하라고 했을 때 하기 싫은 표정이나 태도를 보인 경우는 있었다. 아니면 혼잣말로 아 싫은데, 정도는 들어본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요사이 내가 수업시간에 어떤 학습지나 교과활동을 하라고 했을 때 대놓고 내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아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이렇게 말을 한다. 하기 싫다고.


나는 그 순간 일시정지되면서 말문이 막힌다. 교사 앞에서 대놓고 하기 싫다고 한줌의 거짓없이 순수한 눈빛으로 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학생에게 할 말이 당최 떠오르지가 않는것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적부터 받은 교육은, 그리고 내가 발담은 짧지 않은 교직에서는 학생이 대놓고 하기 싫다고 말할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이론적으로나 실전적으로 경험해본적도 배워본적도 없다. 정말로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게 더 가깝다.


대놓고 하기 싫다고 하는 학생과 뭐라고 더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하거나 실랑이를 해봐야 그건 결국 말싸움으로 번질게 뻔하고 그렇게 될 경우에 나머지 20명 이상의 학생들의 수업이 지체되거나 안 좋은 장면을 연출할 수 밖에 없기에 회피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순간 그런 생각도 든다.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당당함이, 그 기세가 부러운 것이다.


나는 자라면서 단 한번도 부모나 교사라는 권위앞에서 반항해본적도,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해본적도 없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성격탓인지 환경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어설프게 공부는 좀 하는 착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의 영역에서 살아왔기에 그 정도의 발언을 할 수 있는 성격도 깜냥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하기 싫다고 하는 학생을 마주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부러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그 당당함이. 그 반항심이.


뒷일이야 어찌되든말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그 기세를 어쩌면 나는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걸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거나 시부모님이거나 갖가지 종류의 권위 앞에서 한 번이라도 이건 하기 싫다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기세는 학생이지만 내가 배워야하는것 아닌가. 부럽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비록 그 아이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모범생 가도를 향하지 못하고 학업에도 큰 뜻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갈테지만 순하고 착한 아이로만 살아왔던 내가 해보지 못한,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그런 길이라서 질투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 번쯤은 대놓고 말해보고 싶다. 아주 큰 목소리로 하기 싫다고, 이유는 없고 그냥 하기 싫으니까 시키지 말라고. 가끔은 착하지도 않고 순응적이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고 남 비위 잘 말추는 사람도 아니고 싶다. 어쩌자고 나는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일념하에 성격 좋은척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그 학생의 반항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사람에게라도 배울건 좀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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