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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5. 2021

(나름) 차 두대 있는 집

결혼하면서부터 차가 두대 있게 되었다.

내가 결혼 전부터 몰고 다니던 파란색 마티즈가 있었고, 남편은 형에게서 물려받은 10년 넘은 아반떼를 탔다. 아들과 딸이 꼬꼬마일때, 아반떼에 태우고 가다가 길 위에서 퍼져서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견인하고 아이들은 무서워서 뒷 좌석에서 빽빽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반떼를 그렇게 보내고 나름 우리 집 새 차로 등극한 차가 모닝이었고 우리 집 차 중에서 제일 큰 차였다.


그 모닝 뒷좌석에 아이들 둘 태우고 물놀이 용품을 한 가득 싣고, 동해안으로 놀러 다녔다.

아이들이 작긴 해도 그래도 둘인데 갈 때는 작은 트렁크에 짐들을 우겨넣었다가, 마지막 날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미처 튜브 바람이 빠지지 않아 아이들 타는 뒷좌석 밑바닥에 밀어놓고는 아이들 발로 밟아가며 돌아오곤 했다.

딸내미 여섯 살 때쯤인가는, '큰 차가 좋아? 작은 차가 좋아?'물었더니 '차가 작으면 엄마 손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아'라는 깜찍한 대답을 해서는 내 마음을 울렸었다. 물론 지금은 모닝은 자기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 불쌍한 모닝, 한때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차였는데.


일을 하면서는 경차로 전국에 못 가는 곳이 없게 돌아다녔다. 처음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던 날, 고작 천안까지 가는 길이었는데도 길을 잘못 들까 노심초사하고, 옆에 트럭이 지나가면서 차가 덜컹하면 운전대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초긴장하면서 다녀왔었다. 환자들 집을 방문해서 교육하는 일이었는데, 시골로 방문을 가면 직접 기른 감자나 옥수수 한 박스를 나도 모르게 차 트렁크에 실어주시고는 도망가시곤 했다.


마티즈 이후에 차를 스포티지로 바꿨다. 갑자기 커져버린 차 크기에 우리 식구들은 트렁크에 짐을 실어도 실어도 끝이 없다며 감탄했었고, 나는 갑자기 높아져버린 시야에 운전할 맛이 났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차를 잘 모르는 남편이 '분명히 차를 잠갔는데 트렁크가 그냥 열린다'고 고객센터에 컴플레인을 했고, '스마트키는 원래 차 근처에 가면 트렁크가 열리게 되어있다'는 친절한 답변을 듣고 머쓱하기도 했었다.


세상에는 우리 차보다 더 비싼 차들이 많다는 걸 잘 안다.

모닝을 일렬주차하는데, 앞에는 벤츠, 뒤에는 아우디가 있으면 행여라도 앞뒤로 차가 닿을까 봐 조금 들어갔다가 차에 내려서 앞뒤 간격을 살피면서 주차한다. 물론 내 차가 작으니 앞 뒤 간격이 오토바이 한 대씩 지나갈 정도로 충분하지만 행여나 차가 긁히면 모닝을 다 팔아도 문짝 값도 안 나올 것 같아서 조심에 또 조심을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비싼 외제차를 탄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는데 그 외제차 운전자가 '거지라서 그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운전하면서의 시시비비는 다른 문제이고, 비싼 차를 타면서 상대방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다.

경제적으로 우위에만 있으면, 상대방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 경제력을 쉽게 보일 수 있는 물건이 차인 것 같다.

그 논리대로라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적은 사람을 무시할 수 있다. 1억 있는 사람은 10억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당해도 되고, 10억 있는 사람은 100억 있는 사람에게, 또 그 위로 끝없이 경제적 위계층에 따라 우리는 무시당하고 조롱받게 된다. 그것이 맞는 사회일까?

정말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가장 큰 멸시를 당해도 되는 걸까?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는 당위는, 돈에서 출발하는 걸까?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나는 그 비싼 외제차 이름도 잘 몰랐다. 얼마나 좋은 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훨씬 싼 모닝을 타더라도 우리 가족의 추억과 사랑이 차값에 비례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 비싼 차를 타던, 세상 싼 차를 타던, 걸어 다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또한 앗아갈 수 없는 행복이 존재한다.

몇 년 전 아주 힘든 인생의 태풍 속에서 버티고 있을 때, 울면서 운전을 하다가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주차를 하다가 주차장 기둥을 혼자 긁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스포티지 옆구리에는 그때의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 울면서 뿌옇게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었다. '아, 나는 오늘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인생의 힘든 시기를 벤츠가 막아주지는 못한다. 두고두고 생각하는 인생의 추억을 모닝이 방해하지도 않는다.


어떤 차를 타는지 보다, 내 주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한 사회.

그 차의 가격보다, 그 차와 함께했던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이 중요한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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