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아 오를 지지대를 찾아 헤매듯 쫘악 펼친 호박넝쿨이 무언가에 닿는 순간, 착 감아버리는.
무엇으로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몇 번을 휘감아져 있는 모습이 꼬불꼬불 라면을 닮았더랬다. 자연물이 소꿉놀이 주재료였으니 상차림 할 때 많이 뜯어 썼던 기억이다.
그 당시 엄마는 주먹만큼 자란 보들보들 호박을 따다 가늘게 채 썰어 펄펄 끓는 물에 넣었다 바로 꺼내 호박 나물을 해 주셨다. 오래 끓이면 다 으깨지신다며. 마늘과 조선간장, 고소한 참깨와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해주면 맛있다고 했다. 한입도 넣지 않았던 난 호박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야들야들 어린 호박일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해 딸 시기 놓친 녀석은 된장국에 넣으면 된다셨다. 된장국에 들어갔던 물렁한 호박은 그나마 맛있었다.
된장국과 어우러져 푹 익힌 호박은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맛에 그나마 먹을 만했다.
결혼 후에도 호박죽을 제외한 호박으로 요리된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건 여전했다. 시엄니께선 집 근처 텃밭에서 수확한 푸성귀를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로 부치실 때 그 속에 신문지에 폭 쌓인 호박 한두 개가 꼭 들어있었다.
시엄니께서 자식들한테 보낼 생각에 아침, 저녁 발걸음 하며 애써 키우셨을 먹거리를 방치했다 버릴 순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호박 나물을 흉내 내듯 이미 칼은 투박한 채를 썰고 있었던 것. 그이와 따닝이 호박 나물을 좋아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고추장을 넣어 둘은 잘도 비벼먹었다. 더운 여름날, 식구들 입맛 없어할 때 호박 나물이 상 위에 오를 때면 영양만점인 반찬에 정성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세월 흘러 봄이 되면 주말농장에 심을 호박 모종을 직접 사는 날이 올 줄이야!
호박이 커가는 매력을 알아버린 것이다. 집 근처 담벼락을 오르는 호박 줄기를 본 후 호박사랑이 더 짙어졌다.
이른 아침 출근 때마다 어린 날에 보았던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설렘이고 풋풋함이고 반가움이었다. 그런 덕에 발걸음이 통통통에 가까운 경쾌함이 느껴질 정도이니. 양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이런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 공간을 가꾸는 이들의 손길이 부지런함을 너머 사랑 덩어리를 매일 볼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저 뒤에 보이는 우리 아파트 단지
보는 즐거움과 키우는 맛을 동시에 느끼며 성공적인 맷돌호박의 수확으로 내년을 기약했던 우리 텃밭에 올해는 호박을 심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작년 늦가을, 가장자리 위치했던 우리 밭에 누군가 겨우 내내 견뎌낼 비닐을 덮어 무언가를 심어 놓았더라는. 시금치 씨앗을 농장주께 3 봉지나 사서 엄청 뿌리는 걸 보고 그이는 겨우내 시금치만 먹게 생겼다며 우스개소리 하며 야심 차게 겨울작물을 뿌려놓은 상태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가을걷이 끝낸 썰렁한 텃밭엔 그 많았던 이들 한 명 보이지 않고, 농장주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려 2주에 걸쳐 연거푸 방문했지만, 문만 꽉 잠겨 있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겨울을 지나 버렸고, 새 봄을 맞아 분양받을 시기가 되었을 땐 우리 자리 차지해 뭔가 심었던 곳엔 마늘잎이 푸르게 더 푸르게 살랑이고 있었다.
시금치 씨앗을 뿌려놓은 걸 무시하고 비닐을 덮어 무언가를 심었을 당시엔 비닐을 싹 걷어버리고 싶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니 속상하고 답답한 맘으로 겨울을 난 셈이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초록잎을 보자 삐지고 속상한 맘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였는지 모른다. 비닐을 뚫고 뾰족한 연초록 잎이 반가웠다. 가꾸는 손길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볼거리가 생긴 걸 위로 삼았다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겨우 내내 시금치가 초록잎을 틔우는 걸 기대했던 우린 이게 어찌 된 일인지를 알 수 없어 여러 날 답답해했다. 겨울 동안 시금치만 먹게 생겼다며 3 봉지를 뿌렸던 씨앗은 흔적 없이 다른 작물로 심어져 있을 때의 상실감이란. 그 후 많은 이야기가 꼬물거려 쓰려하면 멈칫거려지는 안타까움. 쓸 말이 없었다. 마늘이 자라는 걸 봐선 봄이 와도 수확이 어려울 거 같아 가장자리의 호박과 옥수수를 못 심는다는 막막함에 이불 킥만 해대며 속상했던 나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텃밭 안쪽에 자리했던 60대 부부가 다른 이들의 농작물에 손대는 일이 잦았단다. 농장주께서 나이 든 어른들인데 자꾸 언급하기도 쉽지 않아 내린 특단의 조치가 사람들이 드나들 때 가장 잘 보이는 텃밭이 한 중앙 가장자리였던 거. 사람들이 오가는 잘 보이는 곳에 내놓는 것은 농장주 맘이라고 하지만, 1년 임대기간에서 남은 날들에 이루어진 일이라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약속한 시간이 아님에도 늘 마주쳤다. 호수로 물을 줄 때도 이웃한 텃밭에 튀기니까 조금씩 가까워지려다가 호박과 옥수수 심을 곳이 마땅찮음을 떠올릴 때면 또다시 입이 붙어버리는 거.
저분만큼 알뜰히 텃밭을 이용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퉁명스러웠던 목소리는 자꾸만 작아지고 어정쩡한 인사라도 나누게 되었다.
그이는 가장자리 아닌 안쪽에 옥수수와 호박을 심을 수 없단다. 이웃한 텃밭에 침범해 작물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옥수수는 그렇다고 해도 호박은 도저히 아쉬워서 모종 2포기를 살짝 끼어 넣었다. 그이는 말로는 안 된다 하면서 두 고랑이니 고랑 사이를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자리를 잡아주었다.
다른 이들은 호박 지지대와 울타리를 쳐 주느라 대대적인 공사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이는 토마토와 고추 지지대는 땀 흘려가며 손질해도 호박을 위한 지지대는 아예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토마토와 감자를 다 망쳐놨다며 애물단지 취급이었다. 행진하듯 쭉쭉 팔다리를 휘저으며 뻗어가는 줄기를 거칠게 다룬다든지 한쪽으로 세게 밀쳐놓는다든지. 소중히 다루는 토마토와 고춧대의 손길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 보였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는 호박넝쿨이 좋았다. 앞으로 쭈욱 나아가는 기상이 힘차 보여 같이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같은 호박 모종이라도 키우는 사람에 따라 심지어 부부마저도 달리 대하는 것에 따라 커가는 모양도 다르며 아이 키우는 것이랑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이는 어린 줄기 나오기 무섭게 거창한 지지대에 세워 올려 집게로 옴짝달싹 할 수 없도록 잡아주는 사람,
밭고랑 사이를 타고 나갈 수 있게 길만 겨우 잡아주다 어린 순을 밟기도 하는 사람, 전체 농장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아 그 어떤 것도 방해하거나 받지 않으며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터주는 사람. 나중에 다 자랄 호박 덩치까지 고려해 창고 지붕을 오르게 길을 잡아주는 사람.
감자와 딸기, 상추, 고추를 넘나드는 우리 집 호박넝쿨
고유의 성질을 먼저 알아주면 좋을 테고, 옭아매거나 옥죄지 않으며 자유롭게 뻗어 나가며 맺는 열매가 가장 아름답고 귀해 보였다면.
사실 키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호박의 커가는 성질을 미리 알고 지지대를 높이 세워 줄기를 집게로 집어주며 쓸데없는 잎이나 줄기를 따 주었을 뿐인데, 수꽃이 모자라 열매가 맺히다 누렇게 변해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 저녁 출퇴근길이나 주말농장에서 매주 만나는 호박넝쿨로 인해 행진곡 들으며 발걸음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