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Jul 01. 2022

니네들이 밥을 다 사준다고?

때론 가족관계, 헐렁하고 엉성하게

근래 들어 꽤 긴 3일간의 연휴를 끝내고 우린 다시 모였다. 현관에서 만난 P선생님은 평소 뽀샤시한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 너무 쉬었다며 피곤함이 더 느껴지는 이유를 의아해하며 지나가셨다.


곧이어 만난 C 선생님, 결혼한 지는 몇 달이지만, 마흔을 넘긴지는 몇 해 되셨다.

“선생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풀리지 않는 맘속의 이야기가  있는 듯 말문을 여셨다.

“아, 글쎄, 모처럼의 연휴에 시부모님이 근처에 사셔 맛있는 거 사드리려고 연락을 했거던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어르신들이 또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새 며늘아가가 저렇게 속상해할까 싶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웬일이야, 니네들이 밥을 다 사준다고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요즘 말로 빡쳤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다 빼고 그 말만 듣고 봤을 땐 충분히 며늘 아가 기분이 좋지 않을 것도 같다.

한쪽 입장에서 하는 얘기만 더 깊이 들었기에.


늦은 나이에 결혼해도 새댁인지라 시부모들이 신경이 쓰이셨단다. 안다고 해도 서로 깊이 알지 못하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평소엔 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지쳐 쓰러져 잠자기 바빴고, 간만의 3일 연휴를 둘만의 시간으로 꽉 채울 여행을 뒤로하고 부모님을 0순위로 둔 것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서운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


이런 생각 한다는 걸 시부모님께서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하시진 않았을 텐데...

평소 시부모님께서도 섭섭한 맘이 있으셨던 게다.


며느리와 부모의 양쪽 입장에 서 있는 나로선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논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들의 적정한 결혼 나이라고 느꼈을 무렵부터 학수고대했을 새 며늘 아가와의 새 가족관계.

더군다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으니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을 텐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소식 없다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밥 한 번 먹자고 연락을 해 왔다고 여겼던 거.

아침밥은 아니어도 저녁밥을 정성껏 해놓고 같이 먹고 싶기도 하셨을 텐데, 먼저 가도 되냐는 말을 꺼내기 전엔 밥 먹고 가란 말도 쉬이 못 했을 거다.

반찬을 해주고 싶어도 직접 배달이나 오라 가라가 아닌 경비실에 맡기고 곧바로 사라져야 한다 등 여기저기 듣는 이야기는 많았을 테니.


“선생님, 그럼 부모님께 밥 사드린다고 했을 때 어떤 대답이 돌아왔으면 좋았을까요?”

언제일지는 몰라도, 사위나 며늘 아가 볼 나이가 가까워지니 남의 집 식구 맞이했을 때 나 또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맘에서 물었다.

'아가야, 고맙다!'

거기까지 더도 말고 딱 거기까지란다.


아무리 신랑만을 보고 결혼했어도 주변 식구들이 미우면 좋았던 신랑마저 좋지 않은 눈길로 보게 되는 게 걱정인 새댁 선생님.

참 어렵다,  상처 주고받는 가족들 안 보고 살 수도 없고.


가족끼리 어차피 만나면서  살아야만 한다면? 너무 깊이 있고 촘촘히는 말고 헐렁하고 엉성한 관계로 서로 복 짓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현명할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울림의 소리, 야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