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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Apr 28. 2023

나의 뒷동산-3(완결)

나만의 정상


 뒷동산엔 화살표가 없어, 어디가 정상인지 알 수 없다. 중간중간 벤치와 운동기구가 보일뿐이다. 특히, 벤치는 조금만 걸어도 눈앞에 잘 나타난다. 가끔 이 산이 초행인 사람들은 길을 묻는다. "어디가 정상이에요?" 매번 그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동네 주민들은 어디를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만약 정상따윈 상관없이 그저 걷고 싶다면 여행자의 마음으로 발길의 흔적을 따라 걷기 좋겠다.



정상이라.. 음.. 아마도 오른쪽 코스로 가면 보이는 팔각정이 나름 근사하기 때문에 그곳이 가장 정상답지 않을까 싶긴 하다만 아무도 그곳을 정상이라고 말하거나 그런 표시는 없다. 그냥 팔각정일 뿐이다.



나는 그 반대편 방향의 언덕을 나만의 정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팔각정보다 낮지만 햇살이 잘 들고 운동기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몸을 풀기에 적당하다. 보통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탁 트인 공간에서 내가 사는 동네를 내려다보는 맛을 즐길 텐데, 나만의 정상은 얼기설기 있는 나무와 수풀에 둘러싸여 숨기 좋은 곳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가 사는 곳이 모자이크 조각처럼 보인다.



그렇게 나만의 정상에 도착하면, 숨을 크게 쉬고는 굳어있던 몸을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정해진 루틴이 있다기보다 무의식의 흐름대로 뻐근한 쪽을 요리조리 돌리고 늘리고를 반복한다. 흘깃 옆사람을 보고 시원해 보이는 동작을 발견하면 슬쩍 따라 해보기도 한다. 다리와 팔, 허리를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기구들도 이용한다. 흔히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운동기구 말이다. 나에겐 시원하기보다 시시함에 가까운 운동기구이지만, 안 하고 그냥 가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이곳의 거꾸리는 내가 젤 맘에 드는 운동기구다. 이것 때문에 이곳에 자주 오는지도 모르겠다. 거꾸리에 올라가 늘 지탱하고 있던 다리와 발에 힘을 풀면, 머리가 땅으로 툭 떨궈져 내 몸속의 혈액은 잠시 반대로 흐른다. 굽어있던 척추도 조금씩 늘어난다. 어느새 나는 그 감각을 점점 즐기고 있다. 이어 눈앞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초록 잎사귀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탁 트인다.



머리에 피가 쏠릴 때쯤엔 몸의 균형감각을 이용해 거꾸리를 수평에 맞춰본다. 그럼 살짝 흔들거려서 꼭 아기들이 쓰는 흔들침대에 누운 것만 같다. 그 상태로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애써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특히, 그 자리 거꾸리에서 바라본 하늘은 매일 매시각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전해준다. 가끔은 하늘이 어떤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잊고 있던 중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거꾸리에 내려와 하나의 의식이라도 치르듯 몸을 탈탈탈 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왠지 내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이 사라질 것만 같달까? 그렇게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산을 내려온다.



그런 뒷동산이 내 곁에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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