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劣等感)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이라고 되어 있다. 사전의 뜻을 봤을때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아보인다. 세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존감을 높이고, 우월감을 가지라고하지 열등감을 가지라고 권하는 책이나 사람은 없다. 맞다. 굳이 열등감을 찾아서 가질 필요는 없다. 스스로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낫다. 하지만 열등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열등감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 열등감을 알아보기 전에 열성인자를 알아야 한다. 열성인자를 쉽게 말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몇가지씩 가지고 있다. 장점의 경우 원래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에 대하여 딱히 고민을 하지 않지만, 단점은 다르다. 단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단점을 커버할지,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단점, 열성인자를 더 깊이 인지하게 된다. 열성인자에는 키, 외모, 운동신경, 장애, 성격, 학력, 건강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러한 열성인자는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며, 개인이 선택할 수 없고 타고나거나 주어지는 성향이 크다.
열등감은 위에서 설명한 열성인자에서 파생되는 감정으로, 열성인자를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주관적인 느낌을 말한다. '나는 키가 철수보다 작다'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키'가 열성인자고 '철수와 나의 키를 비교하며 느끼는 감정'이 열등감인 것이다. 만약 객관적으로는 장점이지만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단점이라고 느낀다면 이것 또한 열등감에 속한다. 다시 말하자면 열성인자는 '객관적 사실'인 반면 열등감은 '주관적 감정'에 속한다. 그래서 열등감은 자신이 느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며, 감정의 대상 또한 선택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다시 국어사전의 뜻으로 돌아가보자. 열등감의 뜻에는 두 주체가 등장한다. 바로 '자기'와 '남'이다. '자기'는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고, '남'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 삼는 비교대상이다. 여기서 '남'은 대부분 타인이 되겠지만 한가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주체가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현재의 내가 '좀 더 나은 나'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 비교해서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전자는 '대타적 열등감'이라 하고 후자는 '대자적 열등감'이라고 한다.
나 자신과 비교 - 대자적 열등감
타인과의 비교 - 대타적 열등감
열등감은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하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종류의 열등감을 선택해서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나는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열등감을 선택할 수 있다. 닉 부이치치의 경우 누가봐도 사지가 없는 장애라는 열성인자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비장애인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타적 열등감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열등감을 선택해야하는가? 당연히 우리는 대자적 열등감을 선택해야 한다. 비교를 하더라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과 비교할 때 우리는 건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는 백해무익이다.
그렇다면 대자적 열등감의 비교대상인 '나 자신'은 무엇일까?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은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가진 사람'이다. 쉽게말하면 그냥 부러워하는 대상이다. 예를 들어 내가 키가 작다면 키가 큰 사람을 부러워하고, 악기를 못다룬다면 여러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부러워 할 것이다. 즉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인 '나 자신'은 현재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상적인 나'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 많은 나에게, 허약한 사람은 건강한 나에게, 인기가 없는 사람은 인기 많은 나에게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열등감은 건강한 열등감이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열등감인 것이다. 현재의 나에게 '결핍'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의할 것이 있다. '이상적인 나'가 너무 탁월해서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엄두가 안난다면, 이것은 타인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똑같다. 왜냐하면 대타적 열등감이 나쁜 이유는 그와 닮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이상적인 나'가 지금에 비해 너무 높이 있으면 이 역시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나'라고 해도 그를 따라잡을 여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야지만 우리는 건강한 열등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열등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현재의 나에게 결핍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나 자신에게 결핍을 느낀다는 것은 곧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 재능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나'가 가진 능력의 수준을 목표로 삼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열등감은 인간을 깨어있게 만들며 앞으로 한발짝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사회에 공헌하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