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y수 May 05. 2024

말 잘 들은 아이들의, 최후

치킨 팝콘팀 이쪽으로 오세요. 



큰 아이 학교 학부모 회에서 체육대회 때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해서, 지원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어떤 학교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지 궁금했고, 학교 안에 들어가서 공식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해보고 싶었다. 학기 초에 아무도 안 하는 학부모회에 지원하여 손 든 덕분에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거라, 용기 내 손든 나를 살짝 칭찬했다. 



아침 8시부터 가정실에 모여서 준비를 시작한다 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이후에 준비를 한다고 하여 가져 온 간식과 커피를 마시며 엄마들 사이에 적절히 서 있었다. 아는 엄마는 한 명 있었지만, 그 엄마는 인맥이 넓어 이곳저곳 인사 다니느라 바빴다. 나는 멀뚱 서있으며 비슷해 보이는 엄마 옆으로 가서 치킨 만들어 봤냐는 노력한 티 많이 나는 질문을 던져 본다. 그래도 아줌마들은 어떤 질문이든지 받으면 성심 성의껏 답하는 것이, 참 정감있는 존재다.


등산복을 입고 나타나신 교장선생님을 못 알아보고 떠들다가 움찔 놀라 손을 모았다. 학생 때 떠들다 선생님께 걸린 표정으로 어깨 긴장한 채 손 모우고 있는 나를 깨달으며 공간의 대단함을 느꼈다.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오니 내 몇십 년 세월을 까먹고 본능적으로 학생 때처럼 행동한다. 살아온 세월 한순간 한티끌 모두 어떤 것도 없어지지 않고 지금 내 세포로 존재하고 있구나 싶다. 갑자기 지금 이 순간도 나의 또 다른 세포로 구성이 되겠구나 싶어 쓸데없이 의미 심장해진다. 



치킨팝콘 팀에서 이동과 판매를 맡았다. 치킨이 다 되면 들고나가서 판매대에서 쿠폰을 받고 파는 업무다. 요리 못하는 나한테 튀기라고 안 시켜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매대에 서 있으면 왠지 아이를 만날 수 도 있을 것 같아서 설레었다. 집에서 매일 얼굴 보면 화도 내고 한숨도 쉬면서, 밖에서는 왜 그렇게 못 봐서 안달이고 내 새끼 찾으려 목을 쑥 빼고 있는지, 참 웃기는 엄마다. 




3학년 이어달리기가 끝났다. 오전 일정이 끝난 3학년부터 급식실로 이동해서 밥 먹고 먹거리를 사 먹게 하였다. 그 사이를 틈타 중3 노란색 줄 체육복이 아닌 2, 1학년들이 기웃거리며 먼저 사 먹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미안하다면서도 급식 꼭 먹고 오라 잔소리를 해댄다. 드디어 중3들이 급식을 먹고 들이닥쳤다. 


메뉴는 치킨팝콘, 소떡소떡, 떡볶이, 얼린 음료수였다. 아이들은 천 원 쿠폰을 사서 원가 이하로 손실 내며 판매하는 최애 간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역시나 치킨팝콘에 몰렸다. 정신없이 하다가는 사고가 발생할 것 같아서 줄을 서라고 집에서 소리치던 능력을 발휘해 보고, 쿠폰 통에 미리 집어넣지 못하게 하며 쿠폰 하나를 받으면 그 손에 하나씩 쥐어주는 걸로 룰을 정했다. 엄청난 속도로 판매되어 나가고, 그 무렵 중2도 이어달리기를 끝내고 급식실로 향했다. 



정신없이 팔고 있을 때 계주로 나간 딸아이의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같은 반 옆자리 엄마와 잠시 대타를 세우고 트랙 주변으로 쫓아나가서 아이의 달리기를 지켜봤다. 차라리 내가 달리는 게 낫겠다. 아이가 넘어지면 어떡하지, 바톤을 떨어뜨리면 안 되는데, 달리기 잘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까먹고 온갖 존재하는 리스크에 흠뻑 빠져 심박수가 비상사태다. 아이가 뛰는 것을 보니 마음은 사춘기가 왔지만 몸은 초등 때처럼 날렵하다. 난 백 미터가 20초 때가 넘지만 딸아이는 엄청난 속도로 운동장을 반을 돌고 추월 직전에 바톤을 다음 선수에게 넘겼다. 


다행이다. 아무 일 안 벌어졌다. 

이겨보고 싶은 딸아이 마음에는 관심 없고 혹시나 넘어지거나 실수해서 반 친구들의 원성을 들을까 엄마는 그것만 걱정이다. 어찌 보면 인생을 실수 없이 살았으면 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실수를 바라 봐 주며 더 큰 성장의 기회라 응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책도 읽고 강의도 들어가면서. 막상 내 눈앞에서 아이 실수를 본다고 상상하니 딱 오늘만은 실수하지 말라고 기도 하고 있다. 한참 더 커야 하는 엄마다. 


꼴등을 한 아이 반의 모습을 뒤로하고, 얼른 뛰어 치킨 판매대로 갔다. 2학년들이 여유 있게 사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생각보다 2학년들이 많이 사 먹어서 1학년들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양만 남아있다. 딱 봐도 부족해 보이는데 더 이상 치킨은 없었다. 선생님께서 매대 앞에 서서 1학년들은 급식 먹고 와서 사 먹으라 통제를 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학년들이 와서 사 먹기 시작했다. 급식을 벌써 먹었냐 물어볼 틈도 없이 와구와구 몰려와남아 있던 치킨과 얼린 음료수를 동냈다. 다행히 옆에 소떡과 떡볶이는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다 팔려버린 두 가지 메뉴였다.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못 주는 미안함은 얼마나 크고 민망하던지 그 원망의 눈빛들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있을 때였다. 순간 내 귀에 어떤 아이의 목소리가 꽂혔다. 


야야. 어이없어. 
급식 전에 먼저 사 먹은 애들이 다 먹었어.
너 땜에 괜히 쌤 말들었쟈나. 


난 순간 얼음이 되어 버렸다. 듣고 상황을 보니 정말 그랬다. 급식 먹기 전에 먹었다고 거짓말하고 사 먹은 아이들까지만 치킨과 음료수를 누렸던 것이다. 당연히 엄마가 치킨 팔고 있는 우리 아이도, 치킨을 못 먹었다. 곧이곧대로 원칙이 중요한 큰 아이에게 룰을 어기고 먼저 사 먹는다는 것은 머릿속 옵션에 없는 일이다. 


치킨 양을 조절 못한 잘못도 있고, 급식 여부를 확인 못한 잘 못도 있고 여러 가지가 운영상의 잘못 투성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잘못은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은 덕분에 치킨을 못 사 먹었다는 경험을 남긴 것이다. 이 집단에 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기에, 나는 더 괴로움이 깊어졌다. 어떤 순간에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과연 인생의 진리인지 검은 괴로움이 마음을 휩쓴다. 


솔직히 아직도 이 사건으로 아이와 아무 말 못 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내 머릿속도 혼란스럽다. 분명한 것은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는 급식 안 먹고 먼저 치킨을 살 수 있는 옵션이 머리속에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이 경험이 올바른 해석인지도 나는 모르겠다.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정말 선생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되는 것인지 그때그때 융통성 있게 자기 살길을 찾는 것이 맞는 것인지. 시작은 치킨이었지만 슬픈 사건들도 기억나는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 우린 수십 년 세월 듣고 살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살지만, 틀을 깨고 넘어서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큰돈도 만지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보고 있다. 나도 답을 내지 못해 끙끙 거리는 문제를 아이에게 말해 줄 자신이 없다. 그냥 알아서 느낀 대로 흘러가게 두려 한다. 아마도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회피해 본다.   


딸.
엄마는 너보다 몇십 년을 더 살았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너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